큰나무 서른 한번째 이야기
큰나무 서른 한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1.06.03 07: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은 하루해가 짧은 건지 바쁜 일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는 건지 시간이 금방 가고 자는듯하면 다시 아침 햇살이 고단한 자를 흔들어 깨워 밭 언저리에 세운다. 고추 곁순을 따는 일은 상당한 인내를 요하는데 두골 따고는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아 예초기를 메고 마당에 빼곡히 올라오는 질경이를 줄 날을 이용해서 제거하는데 사방으로 튕기는 모래 알갱이가 팔뚝과 정강이에도 튀어 모기 물린 자국마냥 붉은 멍이 한두 곳이 아니다.

옥수수에 추비를 주는데 변덕스런 봄 날씨에 적응 못한 녀석들은 냉해를 입어 누렇게 말라 죽어 있다. 죽은 것에 미련을 두기엔 살아 있는 것들의 사정이 만만치 않아 포기 사이 잡초까지

뽑으며 추비 주기를 끝내니 점심시간이다.

점심 먹고 난 후의 오후시간은 잠시 쉬고 싶지만 센터 운동장엔 잔디만 살지 않는다. 좁은 잔디 틈 사이에 질경이와 토끼풀이 자라고 듬성듬성 무단점유한 명아주는 두 뼘을 넘게 자라있다. 이러다간 이주자들로 인해 수년을 애써 가꾼 잔디밭이 풀밭으로 변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농약 상에 들려 잔디는 살고 다른 잡풀들은 죽는 선택형 제초제를 여러 병 구입하여 동력분무기를 돌렸다.

센터의 저녁시간은 훤한 시간에 먹는다. 아이들 틈에 끼어 순간의 흡입으로 저녁을 마치고 햇살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극성스러운 매미나방 유충과의 한바탕 화학전을 버릴 준비를 시작했다. 독성이 강한 살충제 두병은 해가지는 것을 신호로 적들에게 치명타를 가하게 될 것이다. 매미나방의 침입은 지난해 봄서부터 인데 거의 모든 나무에 달라붙어 새순을 갈아 먹는데 이들이 먹고 지난 자리는 수년 된 나무라도 견디지 못하고 고사해 버린다. 손가락 두 마디 쯤 자리면 성충이 되고 이후 집안까지 들어와 고치를 만드는데 센터의 흰 벽이 안보일 정도로 몰려오면 백병전을 치러야 한다. 이들이 다 자라기 전에 화학전으로 전세를 내게 유리하게 가져오는 것이 오늘의 목표이다. 경험상 이들은 한 두 번의 농약살포로는 박멸 되지 않는다.

과수원에서 쓰던 이테리제 동력살분무기가 강한 바람을 뿜으며 살충제가 나무로 발사 되면서 머리 위로 매미나방 유충이 떨어지는 것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후득거린다. 생명이 붙어 있는 녀석들은 기를 쓰고 바짓가랑이 사이로 타고 올라오는데 처음은 징그럽다고 느꼈지만 너무 많은 숫자를 보이면서 별개 아닌 것처럼 무덤덤해지기 까지 한다. 이 살육의 밤은 내일 아침 물까치들의 만찬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시 밝은 아침은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의 수고를 보상이라도 하듯 빗 핑계 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고 눈을 감는데 너무도 달콤하다.

아담 이후 인간은 노동에 익숙해져야할 운명이 생겼다. 노동은 죄와 관련된 산물이고 이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생을 다하는 것 말고 다른 것을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구하고 세차게 내리며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영혼에 스미는 행복감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이상이다.

잠이 드는 가 했더니 돈 빌려 쓰라는 전화에, 지인들 전화에 몽롱하게 대답 하고는 다시 밀려오는 잠을 청하는 순간 휴대폰을 만든 자들을 저주하고 푼 전화벨이 또 울리기 시작한다. 순간 비행모드를 생각해내지 못한 자신을 향해 바보라고 욕을 퍼붓고는 아무생각이 나지 않는 두어시간을 입신해 버렸다. 저녁에 다시 내린다는 비는 소강상태이고 구름을 안고 선 주변의 산들은 갑자기 신비스런 곳으로 변해 있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산골 목사로 사는 이에게 바쁜 나날이 그분에 대한 간절함 마져 잊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 피곤이 머무는 육체가 곤할 때면 주님오시기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더욱 깊어간다. 산이실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