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목사중에 감리사와 감독 세워야 한다
선명한 목사중에 감리사와 감독 세워야 한다
  • 민돈원
  • 승인 2021.05.0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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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감리회는 지난해 2년마다 실시하는 감독 선거에 추대 또는 선거로 12명의 감독에 임명된 분들이 있다. 그리고 이번 연회에서는 230여 지방에서 새로운 감리사가 역시 추대 내지는 경선을 거쳐 일부 문제 있는 지방을 제외하고 선출되었다. 적어도 이렇게 뽑힌 감독과 감리사는 감리회 내에서는 그래도 나름대로 알아주는 감리회 조직의 행정수장이 된 리더들이다. 이에 그 역할 수행에 따른 한 시대를 책임을 질 줄 아는 지도력이 요청된다.

세상에서는 감독이니 감리사니 하는 용어가 건축 현장의 용어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어 그다지 알려지지 않는 생소한 용어임이 분명하다. 2년 임기 후에는 목사로 불리기에 사실 직급이 아닌 잠시 주어진 직책이다. 하지만 재임기간 교계에서는 나름 어디 가면 폼도 나고 대우도 받는 지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교권욕은 어찌할 수 없는 듯하다. 예컨대 그 자리를 꿈꾸는 자들이 종종 문자공해가 될 정도로 수시로 다음번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달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차기 순번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어떤 이는 명함에도 그 직함을 넣는가 하면 회중 앞에서나 개인적으로도 목사로 호칭하기보다는 감리사님, 감독님이라고 불러 주어야 기분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사석에서까지 굳이 본인이 먼저 그 호칭을 밝히는 분도 만나 보았다. 반면에 그들과는 달리 비록 감독이고 감리사일지라도 나와 개인적으로 통화한 겸손한 분 가운데 더러 ‘나 000 목사입니다.’ 하는 감리사도 만나 보았고, 그런 감독(회장)도 만나 보았다.

그런데 위에 말한 그런 비본질적인 것들은 다 그럴 수도 있다. 정작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중요한 속엣말을 드러내 놓고 싶어서이다. 바로 그것을 잊지 말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그들을 뽑아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예언자적이고 제사장적인 사명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여기에 책임 있는 응답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라고 부여한 자리이다. 이를 위해 감리회 구성원들이 세워주었고 혹은 소명 받았다. 라는 사명의식 나아가서 역사의식 그런 정도는 갖춘 자여야 하지 않을까? 즉 이전 선임자들 내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식상한 일을 답습이나 하라고 세웠다면 매번 목회자끼리 서로 힘 겨루기할 이유가 없다. 순리대로 순번대로 되는 것이 가장 평화로울 것이다. 예컨대 회의나 주재하고 무슨 폼 나는 행사 순서 맡을 때마다 거마비 받는 일, 이름난 어느 기관에 당연직으로 가는 자리안배 몫에 눈 돌리며, 그리고 종종 소외된 자 찾아가서 공금 가지고 금일봉 전달하는 정도의 임무완수로 그 자리를 탐냈다면 큰 착각이고 아니 된 만 못하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그 시대 시대마다 해야 할 사명이 있기에 다른 시대가 아닌 이 시대 지금 여기에 세워주었다는 분명한 자각이 필요하다. 이것이 많은 사람 가운데 뽑아준 이유이고, 뽑힌 이유이다. ‘악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의인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에드먼드 버크)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 이 시대가 그들에게 요구한 중차대한 임무, 그 미션은 무엇일까? 그것을 다음 몇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1. 최근 몇 년 사이 교회는 물론 학원, 직장에서의 규제법안들로 인해 암암리에 무력하리만치 복음 전도가 현저하게 위축되고 위협받는 실정이다. 따라서 악법 조항에 대한 책임 있는 리더들의 개선 의지와 돌파 능력을 위해 연합된 힘이 필요할 때다. 즉 감리회 내에서라도 제도권에 직책을 부여받은 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교리와 장정으로 손질하려는 소아병리적 망상을 버려야 한다. 대신 공인의 자세로 공정한 교리와 장정이 만들어지도록 법리적인 전문성을 가진 분들을 발굴하여 2년 이상이라도 지속하여 연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반기독교적 권력자들이 ‘인권침해’, ‘종교강요’, ‘혐오 기독교’라는 악성 프레임을 걸어 복음전파를 차단하고 왜곡시켜 버린 악법들을 철폐할 수 있도록 연합된 목소리를 앞서서 낼 줄 아는 자여야 한다.

2. 가정과 교회,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동성애, 퀴어 신학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을 숨기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철회하고 대신 간혹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하는 것처럼 당당하고 선명하게 선언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 나는 1년여 가까이 감리회 거룩성 회복을 위한 행사를 전국에서 모인 몇몇 목사님들과 매월 진행하면서 유감스럽게도 감리회에서 꽤 지명도 높은 분들 가운데 동성애에 관련한 요청을 할 때 기피하는 분들을 접하곤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았기에 현재 학술적인 강연을 통한 근거 자료와 기도회 그리고 관련된 수장들을 만나 개선방안 제시 및 시정을 촉구해 오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중부연회 사태와 같은 성경과 교리와 장정을 부정하는 일련의 일탈 행동이 가속화될 게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 이런 사안에 대해 소신도 없고 어벌쩡하여 야기되는 감리회 내 불필요한 혼란과 소모적 논쟁 차단을 위해 결단 내리지 못한 행정수장은 자격 미달로 걸러내야 한다. 특히 일부 강경론자들이 현시대 사조에 편승하여 성 소수자, 차별, 평등, 혐오 등 온갖 용어 전략으로 다수를 압박하려는 집단적인 주장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그들이 차별이라고 입버릇처럼 주장해 오고 있는 동성애 처벌 규정이 없었고 불이익을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리어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파괴하고 혐오와 차별의 이름으로 다수에게 혐오와 역차별을 가해하고 있다. 도리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혜택을 받고 있다는 말은 숨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행하게도 이 동성애 문제가 정치권과 결부되어 있기에 불가피한 충돌을 피하고 싶은 게 제도권 행정수장들이 갖는 한계성이요 딜레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물론 감리회 법은 범과로 규정하고 있기에 이럴 때 선명한 시대적 양심을 가진 선지자적인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사상 속에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는 용납할 수 없는 흑암의 영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3. 현 코로나 정국에서 성전예배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명확히 하여 권력 앞에 무력하게 저자세로 굽히지 않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 적어도 지역수장이라면 그 직위 유지하기에 급급하여 정부의 지시를 그대로 받아쓰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여느 시기와 달리 특별히 엄중한 이 시대에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미션이라고 본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지금 감리회 이곳저곳에서 희망의 서곡이 이번에 끝난 3개 연회-충북, 남부, 충청-에서 울려 오고 있다. 어두웠던 감리회에 복음의 빛이 비추어지고 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 그 빛은 어두운 이 시대를 더 밝게 할 것이다.

동성애의 정체는 복음의 탈을 쓴 신 막스주의(New-Marxism)의 변종과도 같다. 지지자 중에는 ‘왜 동성애만 가지고 그러느냐?’ 항변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동성애자들과 그 지지자들은 첫째, 죄로 규정한 그 행위를 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둘째, 그로 인한 폐해와 위험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려 가정과 교회 해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심각성에 수수방관 할 수 없다. 셋째, 스스로 속은 줄도 모르고 그 일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면서 결국 다른 사람에게도 죄를 짓게 만드는 여로보암의 패망노선으로 가고 있기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도 굳이 감리사와 감독이 계속 필요한 제도조직이라면 선명성을 가진 목사를 검증하자. 지금 우리는 ‘성경이냐? 세계적 추세에 따르느냐?’라는 문제 앞에서 중립 지키는 수장이 아니라 중심이 분명한 리더를 원한다. 그런 자라야 책임 있는 리더로서 복음의 본질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을 거라고 본다.

이런 선명성만이 코로나 시국 속에서도 도리어 한국교회는 유럽과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고 숱한 고난에서 이겨낸 승리하는 교회가 되어 더 비상할 것이고 희망의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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