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산상수훈에 대한 반응 (마 7:28~29)
52. 산상수훈에 대한 반응 (마 7:28~29)
  • 성모
  • 승인 2018.12.2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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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4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산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은 길과 생명과 진리 그 자체이심을 보여 주셨고, 그의 가르침을 듣던 많은 군중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어느 민족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가르침을 받아 왔으나 지금까지 들어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의 새로운 가르침이었기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들은 주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을 통해 율법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가르침과는 달리 권세 있는 자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태는 무리들의 반응을 본문에서 묘사하고 산상수훈을 끝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1) 가르침에 놀란 무리들

"놀래니"(exeplhssonto)는 전치사 '...로부터'(ek)와 때린다, 친다'라는 동사(plhssw)가 결합한 합성동사로서, 놀라서 어리둥절해진다라는 뜻이었다. 예수의 산상 설교를 들었을 때 지금까지 들어오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말씀 때문에 무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같은 반응은 급작스러운 어떤 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말씀에서 생생하고도 신비로움을 경험했기 때문이었고 그와 같은 신비로운 경이의 체험은 신앙을 소유하거나 신앙을 굳게 하는데 필수적인 것이며 매우 유익한 것이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유형을 달리하지만 말씀을 듣거나 사건을 접할 때 공통적으로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기독교를 경험의 종교 또는 체험의 종교라고도 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대부분 거의 모두 나름대로의 신비한 경험의 체험자들이다. 누구든지 나름대로의 독특한 신비의 경험은 신앙을 유지하는데 뿐 아니라 성장시키는 데도 대단히 중요하다.

2) 권세 있는 자의 가르침

주님의 가르침에 대해 이처럼 놀란 이유는 지금까지 그들이 과거의 어떤 가르침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씀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5장에 나오는 내용처럼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식으로 들어 왔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씀을 마 5:22~44 사이에서만도 6번이나 되풀이하시었고,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심판주이심을 나타내는 말씀(21~23절)까지 하셨다. 이에 그들은 숨을 죽이고 경청했을 것이다. 이때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말씀들을 되풀이 할 때, 또 그의 가르침에서 보여지는 권세 있는 자의 모습 때문에 더욱더 군중들은 놀라워했다. 과연 주님은 많은 권세를 가지신 분이심을 그 외 여러 곳에서 되풀이 하셨다. 마 9:6에서는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 (권세 중 가장 큰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니"라고 하셨다. 주님은 죄에 대해 말씀으로 깨우쳐 주실뿐 아니라 말씀을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언제나 그의 죄까지도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고, 그러한 죄 사함은 십자가에서 극치를 이루셨다.

또 요 5:24, 27에서는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나하나니......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영생의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심판도 받지 아니한다. 이유는 심판의 권세도 주님의 권한에 있기 때문이다. 마 28:18을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셨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에는 하늘뿐 아니라 땅의 모든 권세까지도 주님의 권한 하에 있게 되었다. 그와 같은 권세를 가진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으므로 그의 말씀을 듣는 군중들은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완전히 청중을 사로잡고 압도하는 말씀을 듣고도 믿고 따르려는 무리가 별로 많지 않았다는 점인데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참으로 완고해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놀라움에 그쳐서는 안 될 말씀

1) 서기관의 가르침

서기관은 히브리어로 소페림(Sopherim)으로 성경을 쓰는 자를 가리킨다. 구약시대에 이미 오래 전부터 서기관 제도가 있었다(삼하 8:17; 스 4:8). 특히 에스라는 율법에 능통한 성경학자로, 수문 앞 광장에서 그와 말씀을 증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아멘 아멘 하며 응답했다(느 8:1~12). 구약시대 말씀에 의한 대 부흥회의 장면인데, 나는 이것을 구약시대에 에스라에 의해 제시된 강해 설교의 모델로 본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 중에 서기관이 있었고, 신약시대에서 기관은 바리새인들과의 율법적인 면에서 볼 때 관련이 깊었다(막 2:16; 눅 5:30). 그러면서도 구분되는 것은 바리새인들은 보수적인데 반해 서기관들은 자유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서기관이 될 자는 5세부터 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13세에는 '배움의 아들'로서 고등교육을 받고, 30세 때 비로소 가르치는 자가 된다. 서기관을 율법사 또는 랍비(선생)라고도 불렀으며(마 22:35; 눅 5:17), 그들 중에는 공회 회원이 되는 사람도 있었다(막 14:43; 15:1). 예수님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주로 서기관들에 의해서 되어졌는데, 그들은 극단적 율법주의에 치우쳤으므로 바리새인들과 별로 다름이 없게 되었다.

2) 순종해야 할 말씀

주님께서는 때로는 위로의 말씀을 통해서 상처 입은 자들에게 참된 위안을 주는가 하면, 교훈적인 말씀으로 권면도하고 책망도 하시면서 때로는 명령을 내리시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죄의 길에서 돌이키고자 우리의 순종과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으로. 서기관의 가르침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며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듯 했으며 권세 있는 자의 말씀을 힘 있게 증거하셨다. 그러나 문제는 놀라워만 할 것이 아니고 감동된 말씀들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순종과 결단을 요구하시는 것은 축복하시기 위함이므로 성도는 그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복 받는 삶이 된다.

신 28장은 말씀을 순종하면 범사에 복이 임한다고 하였고, 시편 1편은 말씀을 순종하면 시냇가의 나무처럼 열매 맺고 하는 일마다 형통한다고 했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8복은 말씀 순종하는 자가 받는 복이며, 계 1:3은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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