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비주얼 제시하는 노후 대책
영적 비주얼 제시하는 노후 대책
  • 민돈원
  • 승인 2022.11.2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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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12월8일 중앙일보 기사에 오동찬(54·치과의사)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치과의사)의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그 당시 기자가 “왜 도시에 나가 개업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오동찬 의사는“마음을 터놓고 의사를 신뢰하는 환자들을 가진 의사보다 행복한 의사가 어디 있겠느냐?”라고 반문한 기사 내용이 실렸다. 그리고 이번 11. 27 중앙일보는 다시 그에 대해 보도했다. 정몽준 아산재단이 수여하는 아산 의료상 시상자 선정 기사다. 그는 1995년 공중보건의로 국립소록도병원에 간 뒤 27년째 한센인을 돌보는데 월급과 대학 강의료를 썼다고 한다. 안면 기형을 가진 이들의 안면 성형 재건 수술과 의치·보철 시술 등도 지원했다. 아랫입술 재건 수술법을 개발해 500여 명을 치료했다. 한편 이번에 상금으로 받은 2억 원 전액은 가족회의에서 소록도 주민(여행 경비), 해외 빈민촌을 위해 쓰도록 송금했다고 한다.

오 의사는 “죽을 때 흙으로 돌아간다는데, 덤으로 들어온 돈을 갖고 있으면 욕심만 생기니 내가 가질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집이 없는데 퇴직 후 어떡할 거냐? 라는 질문에도 “퇴직하면 필리핀이나 캄보디아의 한센인 마을이나 빈민촌으로 가서 진료하면서 살려고 한다. 지금은 공무원 월급으로 부모님 용돈 드리고 우리 가족이 사는 데 지장 없다. 퇴직 후에는 연금이 나오는데 그 정도면 필리핀 생활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해외 빈민촌 진료 후에는 항상 주민들에게 점심을 산다. 5만 원이면 60~70명이 한 끼를 해결한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장래에 대한 사명이 분명할 때 오 의사와 같이 소유 가치로 사는 게 아닌 존재 가치로 살아감으로써 세상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사람을 보면 아직도 세상은 이런 참신한 희망의 등불을 지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유형의 기사를 접할 때마다 내게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다. 목회자는 적어도 이 땅에 학력이나 그 방면의 리더로서 남을 지도하고 가르치고 정신적 영적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고급 인력에 속한다, 그렇다면 은퇴 이후라도 사역의 수명이 끝나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영적 생산자로서 사회에 일익을 감당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게 마땅하다. 즉 그 존재 가치를 계속 창출해야만 한다. 예컨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생산공장을 세워 국가 경제력에 공헌하듯이, 교육가들은 교육현장에서 교육의 질을 향상하여 학문적인 공헌을 하듯이 각각 한 영역을 담당할 수 있는 우수한 자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의사와 같이 목회자의 경우 노후 대책에 대한 건설적인 대안과 다음 세대와 후배를 위한 창의적인 접근 방법이 요청된다. 흔히 목회자들이 모이면 지극히 현실적인 이슈-어떤 집에서 살 것인지, 자신은 은급비가 얼마이고 국민연금이 얼마이며 노령연금이 얼마라는 등-를 피해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접한다. 즉 은퇴 이후 노후 문제 주류가 이런 쪽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교회 사이즈에 따른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평생 영혼 구원을 강조하고 이 땅에 보이는 것에 대한 애착보다는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품고 살아왔다는 확신이 분명하다면 은퇴 후 무언가 상대적인 것들, 예컨대 집이 있고 없고, 재산축적이 많고 적고 하는 이런 것들로 노후의 가치를 서로 평가한다면 그동안 과연 목회자로서 성도들에게 외쳤던 복음이란 무엇이었을까? 에 대한 회의적인 물음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늘의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온 목회자라고 하면 만나서 나누는 노후 대책, 은퇴준비 관심거리가 고작 집 장만, 두둑한 은급비나 노후연금 장만 등에 머무는 육신의 소욕보다는 이 사회에 오히려 신선하고 참신한 삶의 모습으로 비추어진 영적 비주얼로서의 스승으로 남을 수 없을까 하는 고민과 그리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확실한지? 이보다 더 큰 준비는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품고 있기에 적어도 지금으로서 나의 고민은 이것이다. 은퇴 후 어디 가서 주님 부르신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기껏 여행이나 다니며 즐기는 편안한 노후보다는 지금 당장 통장에 변변한 잔고없이 살아오고 있지만 나름 영적 생산자로서 ‘어떻게 하면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의 악한 영적 세력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레전드로서 마치 축구의 ‘빌드업’에 해당하는 영적 전략가로서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 떠나지 않는다. 왜냐면 현재 안팎으로 영적 위기에 처해 있는 한국교회와 이 민족을 보노라면 누군가는 이 일에 핍박당할 각오를 하고 외침으로써 희생하고자 하는 영적 파수꾼 역할을 최선봉에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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