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런 자매가 있다.
그래도 이런 자매가 있다.
  • 민돈원
  • 승인 2022.12.06 08: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주 전 화요일이었다. 우리 교회 권사님 부부 큰 딸인 자매(26세)에게 PC 관련 도움받을 일이 있어 교회로 불렀다. 지난해부터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 자매는 교회 다닌 지 얼마 안 되어 주일 오후 찬양 싱어로도 활동을 하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모두 주일 오후 찬양을 인도하는 싱어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매는 찬양과 함께 몸 찬양도 그의 어머니 권사와 호흡이 잘 맞다 보니 쉽게 적응하여 지금까지 잘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원에서 1년 전 유아교육을 전공한 자매라서 교회학교 유초등부와도 쉽게 잘 어울리는 장점이 많은 자매다. 그런 그가 나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 하는 얘기인즉슨 다음 주와 그 다음 주 주일을 빠져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자기 친구 결혼식이 주일에 있는데 지금까지는 주일에 안 빠지려고 많이 정리했는데 이번은 거절하기가 곤란한 게 친한 친구라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면서 유튜브로 드려도 되느냐는 질문이다.

내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유튜브가 놀러 가고 결혼식을 위한 예배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참고하는 것이지 그런 것을 예배라고 말할 수 없다. 또 결혼식에 그날 신부는 정신이 없어 누가 왔는지 잘 모른단다. 정작 친한 친구를 위해서라면 토요일에 미리 찾아가서 주일예배와 맡은 사역 얘기를 하면서 이해를 구하고 축의금도 그날 전달하여 축하를 해주는 시간 갖는 게 친구를 위해서도 정성이 들어있고 교회예배를 소홀히 여기지 않아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않겠느냐? 잘 생각해 보아라. 하고 돌려 보냈다.

이후 이런 두 번에 걸친 카톡을 보내왔다.

“감사합니다. 저도 목사님께 제대로 신앙을 배워서 올바른 길로 가고 싶습니다.” 이에 수23:10 말씀을 들려주었다. 이윽고 다시 두 번째 카톡을 보냈다 “오늘 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식 이후에 친구를 따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게도 이 자매는 친구 결혼식 가는 것을 주일예배를 희생시키지 않고 더 소중히 여기기로 하여 접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주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 가족 중에 고모 집안이 모두 안 믿는 집안이어서 종종 주일에 여행날짜 내지는 생일잔치 등을 잡곤 한다. 딸은 뜻이 확실한데 이번에는 그 할머니(집사, 76세)가 고모들과 여행간다고 이 집안 가족을 데리고 가려다 권사 부부는 교회에서 맡은 일이 많아 같이 갈 수 없게 되자 할머니가 이 손녀딸과 같이 가길 원하다 고 하며 ’목사님 이번만 꼭 허락해 주세요.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 그럴게요...’라고 자매 엄마 되는 권사가 내게 찾아와 애걸복걸하다시피 사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허락 하지 않았다, ‘왜 딸도 가길 원하지 않는데 그러느냐?’ 했지만 신앙의 중심이 없는 할머니 입장이 너무 완강하여 결국 그 자매는 원치 않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가기 전 내게 답답한 심정으로 카톡을 보냈다.

“목사님 이번 주 주일예배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정말 마음이 무겁고 힘들어요. (친척이 하도 종용하여) 다음부터는 예배 불참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목사님”(눈물 이모콘) 고모들과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여행해야 하는 착한 이 자매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순수 신앙을 지키기가 가족 때문에 힘들 수 있다는 반증이다.

코로나 이후 예배가 소홀히 여겨지고 무게감이 퇴색되어 가는 시대다. 더더구나 예배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신학자, 목회자들로 인해 그 수단으로 유튜브, 비대면 예배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사용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믿음의 선조들이 주일을 생명처럼 지키고 예배를 온전히 드려야 한다는 영적 순결이 최근 들어 도리어 환영받지 못하는 그런 시대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제 갓 신앙생활을 한 초신자에게 신앙의 규범이 철저하고 성경대로 복음을 탈선하지 않는 기본을 잘 가르쳐야 할 책임이 먼저 믿은 교회 리더와 목회자에게 중차대하다는 사실쯤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질되거나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