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광복은 지금부터다.
진정한 광복은 지금부터다.
  • 민돈원
  • 승인 2022.08.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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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대신 국민학교를 다녔다. 국민학교란 말이 일제 잔재 용어라고 해서 언제부터인가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땅의 정치인들과 교육부 장관 등 일선 교육책임을 맡은 자들에게 한 가지 깊은 회의감과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국경일 특히 삼일절, 광복절, 제헌절, 한글날 노래 등을 부르지 않는 초등학교 세대를 만들어 놓았는가이다. 초등학교라는 이름만 바꾸었지 의식은 죽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로 이름만 바꾼다고 일제 식민지 잔재가 자동으로 청산되는가? 오히려 우리 세대는 비록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학교를 다녔어도 음악책이 따로 있어 여기에 수록된 이런 역사적 의미가 있는 노래를 국경일이 오면 거기에 해당되는 노래를 늘 불러 민족의식을 고취하도록 미동의 몸짓이라도 있었다. 어려서 그 노래의 의미를 깨닫고 부른 것 아니었겠지만 그런 노랫말 속에 들어있는 가사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민족의 혼과 역사의식을 가진 분들이 작사한 것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번 주일(14일)은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해방된 15일 광복절 77주년을 맞아 그때의 감격을 되새기고 기념하는 광복절 기념 주일로 지켰다. 광복이 무슨 뜻인가? 빛을 다시 찾았다는 말이다. 그 빛이 식민지의 어둠과 종살이에서 나라를 되찾은 회복의 빛이요, 억압과 사슬에서 해방을 찾은 자유와 해방의 빛이요, 신앙의 자유를 다시 찾은 거룩한 복음의 빛이요 민족의 자존심을 다시 찾은 광명의 빛이라 할 수 있다.

그 빛을 ‘거룩한 빛’이라고 광복절 노래말 2절 가사에 기록하고 있다. ‘광복절 노래’는 1950년 4월에 가사가 최종 확정되었다. 그리고 그 해 8.15 광복절 행사 때 불릴 예정이었지만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광복절 행사는 전쟁으로 인해 당연히 노래도 불리지 못했다. 더욱이 이를 작사한 독립 운동가이자 한학자였던 정인보(1893-1950) 선생은 1950년 북으로 피랍돼 이 노래를 정작 작사하고도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가사 1.2절은 이렇다. 이런 노래를 가진 음악책이 지금에 와서 더욱 그리워질 정도다.

1.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2.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세계 어느 나라든 그 나라 국민이 부르는 국가가 있다. 우리나라는 애국가 속에 ‘하나님이 보우하사’라고 하여 노랫말 속에 그 나라 정체성과 혼을 담고 있다. 학교는 교가가 있고 군대에는 군인정신을 충일하게 하는 군가가 있다. 농민가도 있고 사가도 있다. 모든 종교에는 그 종교가 주창하는 노래가 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찬송가가 있다. 이렇듯 광복절 노래말 속에 들어있는 빛은 기독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

창1:2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을 때 이어서 다음 3절에서 하나님이 가장 먼저 말씀으로 창조한 게 빛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8:12) 동시에 그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요 생명을 주는 빛이다. 이에 우리를 향해 “주안에서 빛이라.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라고 대우하는 대신 마땅히 책임적인 사명을 명령한다. 나중에 계시록에 가서는 이 빛이 자연의 피조물로 만들어진 낮의 해나 밤의 달도 필요없는 영광의 빛이요, 어린 양 곧 예수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다(계21:23)

매년 빛을 찾은 광복을 맞아 떨쳐 버릴 수 없는 게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지난날 20세기 초반에 물리적인 나라를 잃은 어둠의 식민지였다가 해방된 광명, 빛을 다시 찾은 그 기쁨에 감격했다. 그러나 말씀의 빛(시119:105)을 잃어버린 문화 종속주의, 문화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도록 바짝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매우 위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곤란하다. 다시 말해 절대 진리를 부정하고 왜곡하며 섞어 버림으로써 복음의 빛을 희석하는 인본주의와 세속주의, 무엇보다 극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에서 유출된 희화화, 형해화, 포스트 모던화 등으로 절대 진리를 해체시켜 버리는 일을 서슴치 않고 있는 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한국교회를 바라볼 때마다 영적인 광복이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하게 요청될 때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진정한 광복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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