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먹게 된 보신탕
난생 처음 먹게 된 보신탕
  • 민돈원
  • 승인 2022.08.02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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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섬기던 교회 성회를 마치고 강사식사 대접을 위해 음식점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은 진주에서 사천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곳으로써 전국에서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었다. 다름 아닌 일명 보신탕을 잘 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당시 그 자리에 나름대로 교계에 알려진 유명부흥사도 있었다. 대부분 다른 메뉴가 있을 리 없는 동일한 메뉴였다. 그런데 나와 두세 사람은 별도 메뉴인 삼계탕으로 주문한 적이 있다. 내 주위에 있는 분들 치고 이 음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내 생애에 이런 자리를 여러 번 경험했지만 한 번도 입에 댄 적이 없다.

그런데 한번은 이와 관련된 해프닝이 일어났다. 경기도 여주에 소재한 모 감리교회에 지인 목사님의 소개로 부흥회를 인도하러 간 적이 있다. 여름에 간 3박 4일 일정이었다. 흔히 그렇듯이 첫날은 저녁부터 인도하게 되었다. 강사인 나에게 집회하기 전 저녁 식사를 그 교회 장로님 권사님 가정에서 대접한다고 초청을 받았다. 대개는 강사에게 메뉴를 물어보는 것이 상례인데 그 당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또 대부분 목회자들이 보신탕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마도 최고 몸에 좋은 메뉴를 나름대로 준비했을 것이다. 몇 분들이 더 추가로 와서 음식준비를 거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묻는다 ‘목사님 보신탕 좋아하시죠?’ 아니! 내가 이 물음에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안 좋아한다고 할 수도 없어서 대충 얼버무렸다. 단일 메뉴인 푸짐한 수육과 함께 탕으로 차려진 상을 받았다. 할 수 없이 사실대로 말씀 드렸다. 그러면서 전혀 안 먹을 수는 없어서 몇 점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대체 음식으로 그 힘든 식사자리를 간신히 마친 기억이 있다. 물론 그 이후로도 그런 자리는 있었지만 입에 대지 않았다.

더욱이 최근에는 애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법적인 처벌이 강화될 뿐 아니라 출산율이 급격히 저하된 인구절벽 시대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일 대신 거의 육아 수준과 맞먹는 애견을 유모차에 태우고 다닐 만큼 대우를 하는 애견인구의 증가로 보신탕을 좋아하는 인구도 아마 현저하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러던 중 한편으로는 이율배반적으로(?) 내 생애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일이 어제 8.1(월) 일어났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우리 교회 다니는 성도 친척으로 인천에서 딸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내가 섬기는 교회 바로 가까이에 농막을 지어놓고 종종 왕래하며 밭농사를 소일거리로 하는 권사 부부가 있다. 이분들이 금년부터 그 농막에서 매월 월삭이면 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예배 인도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까지 줄곧 드려오고 있다.

어제도 8월 첫날 월삭 예배를 드리는 날인지라 가게 되었다. 예배가 끝나면 권사님의 융숭한 점심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어제 그날은 메뉴가 바로 보신탕이라면서 ‘목사님 보신탕 드세요?’ 라고 묻는다. 그러자 아내가 거든다. 아내는 보신탕 예찬론자이다. 그 사연이 있다. ‘언젠가 목이 안 좋아서 그것을 먹었는데 금방 회복이 되고 좋아진 기억 이후로 좋아한다’고 하면서 덧붙이기를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권사님이 예비해 주셨구만...’하면서 먹도록 부추긴다.

최근 매일 기도회로 목에 무리가 왔는지 주일 설교 때도 쉰 소리로 애를 먹었는데 연일 목을 쓰다 보니 회복이 쉽게 되지 않은 상황에 오늘 그런 자리를 맞이한 것이다. 난감한 상황에 세 가지 때문에 갈등이 되었다. 첫째, 권사님이 특별히 친정 아버님이 사주신 것을 어제 월삭 예배드리는 날 목회자들이 대부분 좋아한 것을 알고 나를 대접하고 싶어서 따로 구별하여 가지고 왔다고 하니 그 정성을 뿌리치기 힘든 점, 두 번째는 목이 회복되지 않고 계속 말씀 전하고 기도회 인도를 해야 하고 더군다나 여름 캠프를 앞두고 목을 써야 하는데 이 상태로는 듣는 학생들이 불편하다는 점, 셋째 아내가 한 말, 자신도 목이 안 좋을 때 이것 먹고 회복되어 금방 좋아졌다는 솔깃한 말, 이 세 가지가 지금까지 금기로 여겨 스스로 입에 대지 않았던 내게 설득력있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금기를 깼다. 새로운 개인적 역사를 쓰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면서 이 세 가지를 합리화하기 위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약방에 가서 목 회복할 약을 물어볼까 했는데 권사님이 예비하신 귀한 대접 약으로 알고 먹겠다.”

먹고 난 이후 낮동안 정말 좀 좋아진 듯 하더니 저녁에 통성으로 기도 인도하다 보니 다시 쉰 목소리로 잠긴다. 이에 약으로 먹었기에 계속 먹을 일은 없어 보인다. 다만 식용으로 오래전부터 각광 받았던 우라나라 전통 음식이라 할 수 있는 이 영양탕이 언제부터인가 냉대받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격세지감이다. 이 여자 권사님도 남편이 먹는데 두 딸의 눈치를 보며 먹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말이 통할 수 있을까? ‘사람이 개를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개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거다.’ 나는 어제 평소 지금까지 지켜온 금기를 깨긴 했지만 여전히 이 음식 예찬론자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허약한 분들이나 몸의 회복이 필요한 분들에게 몸보신을 위한 식용으로써 약이 된다면 굳이 혐오식품으로 낙인찍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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