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톱으로 벌목하기
엔진톱으로 벌목하기
  • 최광순
  • 승인 2022.03.06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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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

서귀포에 일이 있어 갔다가 쇠소깍에 들렀습니다. 처음 보는 느낌은 철원 한탄강의 축소판 같더군요. 철원에서 10년간 목회하였기에 한탄강은 익숙한 곳입니다. 평지에서 갑자기 10M 이하로 땅이 푹 꺼져 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같은 곳이죠. 이곳 제주의 쇠소깍도 그렇습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한탄강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는 크지 않은 땅덩어리에 볼 것이 많은 동네입니다.

항상 지인들이 거친 일을 하는 나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합니다.

그런데 조심해도 안 되는 일이 이 일이 아닌가 합니다. 2주간에 걸쳐 120평의 감귤나무를 모두 잘랐습니다. 시작할 때는 나무만 보이더니 끝나니 허허벌판입니다.

그리고 방풍림을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감귤나무는 십자가를 만드는 곳에, 자른 방풍림은 성찬기 만드는 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1년 중 이맘때가 아니면 나무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봄에 수분을 빨아들이기 전 나무를 전지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70~80%의 제작 중 필요한 나무는 직접 벌목합니다.

혼자 들 정도로 다시 자른 큰 나무 한 덩이가 40kg 이상입니다.

조금은 버거운 무게이기도 하죠. 100개만 대략 계산해도 4t입니다. 2주 동안 1t 트럭 15차 분량을 자르고 옮겼네요. 그러나 지금 구한 나무는 1년이 지난 뒤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자연건조를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이 일은 항상 1년 앞을 살아가야만 하는 일입니다. 1년 동안 쓸 나무가 넉넉히 준비된 것 같습니다.

지난주 엔진톱 작업중 뭔가 따끔하기에 보았더니 허벅지가 찢어졌습니다. 동네 외과에 갔더니 응급조치만 해주고는 이곳에서는 안 되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급히 응급실로 갔습니다. 다행히 근육은 상하지 않았고 많이 찢어진 상태여서 좀 많이 꿰맸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내가 원할 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압박붕대를 감고 다음 날부터 다시 엔진톱으로 통나무를 잘랐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실밥을 풀고 있지만 꿰맨 곳이 많아 한꺼번에 풀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일주일간 풀었습니다. 두꺼운 통나무도 두 동강 내는 엔진톱인데, 작은 상처만 주었다는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아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항상 생깁니다. 작은 상처들은 매일 하나씩 생깁니다. 목회하면서도 항상 평안했으면 하지만, 교회란 곳은 긴장을 풀 수 없는 곳이었던 같습니다. 그렇지 않을 것 같은 교인이 갑자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목회를 꼭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나의 무능력을 실감할 때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런 상처와 아픔을 맞이할수록 위기 대처 능력이 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목회든 나무를 다루는 노동이든 참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봐도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목회할 때도 미치고, 뭐든지 미쳐서 하면 안 되는 일도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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