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마흔 네 번째 이야기
큰나무 마흔 네 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2.03.03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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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여러 일들이 겹쳐 혼란을 격을 때가 있다. 무엇을 우선해야하는지 선택이 쉽지 않고 일마저 진척이 더디면 금 새 지치고 만다. 이럴 때 내가 선택하는 방식일 한 가지 일에 만 집중하며 나머지 일들을 잊으려 한다. 아니면 아주 단순한 일들부터 처리하며 큰일들이라고 생각 되어지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한다. 시간만 된다면 우두커니 일을 놓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일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는 경험을 한다.

요 며칠 지난해부터 적체 된 일들이 몰려 산만한 시간들과 다투느라 여간 고단하지 않았다. 이번에 선택한 방식은 창고 같은 공간을 정리하고 방을 만드는 일을 벌였다. 땀을 흘리며 필요 없는 벽을 허물고 바닥을 메우고 모래와 자갈을 섞어 방바닥을 채웠다. 벽은 단열재를 넣어 가베를 대고 다시 열 반사 필름이라는 단열 효과가 좋다는 부직포 형태 재료로 한 번 더 벽을 처리하고 보일러 배관 공사도하여 제법 그럴싸한 방을 만들었다. 아침부터 시작하여 어둠이 세상을 빈 공간 없이 채울 때 까지 몸을 고단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여전히 일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밤이면 해결점을 찾느라 끙끙거리며 편치 않은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도배공을 불러 재색 빛의 벽지로 마감하면서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부채감처럼 남아 있던 적체 된 일도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겨우 편안을 되찾았다.

시골 부자 일부자란 말이 있다. 땅도 제법가지고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시골부자에게 그만큼 농사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하고도 다시 해가나기 전에 일터로 나가도 그들의 일은 끝이 없다. 이들을 닮아가는 것일까 편히 지내도 누구도 말할 사람이 없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일도 많아진다. 매일 들녘에서 힘든 농사일을 하는 동네 어른이 나를 보고 목사님은 참 좋겠습니다. 주일 날 예배만 드리면 달리 할 일이 없지 않나요. 라고 물어 온다. 시간도 많고 여유로워 보였나보다 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답을 해드렸다. 그럼요 어르신 농사일 하시는걸 보면서 목회하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이 여유 있게 집에 있으니까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어르신 논밭전지를 제게 주시는 조건이라면 할 수만 있으면 바꾸고 싶다고.

누구나 자신이하는 일이 쉽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 마다 나름의 어려움이 존재하고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기 마련이다.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나 영구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자주 만나야하는 직종의 사람들 그리고 사람을 상대해야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목회자도 나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넘는 사람들이다. 엄연히 이들도 사람인데 일반인들과 다른 무엇을 요구 받고 살기에 고도의 정신체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내게 있어 일정기간 정신체력의 성장시기가 지난 후 좀처럼 성장이 되지 않는데 있다. 남들은 하나님에게 도깨비 방망이라도 선물 받은 사람처럼 기도만하면 다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이 녹녹지 않다는 것은 목사라면 공감하는 사항일 것이다.

엊그제 지방회에서 원로 장로님 인사 시간을 가졌다. 은퇴하셨지만 현역 못지않게 정정해 보이셨다. 그분들 중에는 내가 목회 초년생 때 은퇴하셨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지방회에 참석하시고 계셨다. 문득 주변 사람들이 듣게 나는 중얼거렸다. 장로님들은 은퇴하시고도 건강한 분들이 많은데 목사님들은 은퇴하면 대부분 금방 돌아가시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러고 보니 한 지방에 계셨다가 은퇴하신 목사님들 중에 살아계신 분이 한 두 분만 계시고 모두 일찍 주님 곁으로 가셨다. 그분들의 삶도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 고단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내일 다시 힘든 일들이 찾아들어도 소명 아래 이일들을 감당하려고 애쓰면서 보내게 될 것이다. 단지 바람이라면 오늘의 골몰하는 삶이 하나님 나라에서도 의미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집 앞 도랑에서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린다. 봄이 오려나보다.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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