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마흔 여섯 번째 이야기
큰나무마흔 여섯 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2.04.07 2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것은 덜컹거리는 삶의 요철을 힘겹게 겪어낸 자의 이야기이다. 평상이 주는 행복의 순간도 그에게는 사치스러운 것이다. 어린 나이에 그의 부모와 생을 달리하는 이별을 했다. 심한 몸살을 앓고 기운을 차린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의지할 것이 없어진 아이는 아이로 세상을 살아 낼 수가 없었다. 어린 동생들의 엄마이어야 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었다.

그가 처음 접한 돈벌이는 중국집 심부름꾼이었다. 축 늘어지다시피한 어린 동생을 엎고 손님이 다녀간 식탁을 닦고 음식을 날랐다. 동생은 언니의 등에서 배설을하고 울다지치면 그대로 잠에 들었다. 주인 어른들의 구박과 아이 몸에서 나는 역한 냄새는 그곳 생활을 오래할 수 없었다. 동생이 겨우 걸움마를 배울 무렵 아이는 동생을 등에서 내려 놓고 새로운 돈벌이를 찾아 나섰다. 동생이 먹을수 있도록 밥과 물그릇을 바닦에 놓아 두고 동생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문을 잠가두고는 꼬막을 손질하는 갯가에서 종일 손이 부르트도록 꼬막을 손질했다. 낮에 참을로 준 빵 한봉지는 동생을 위해 품속에 넣어 두었는데 이리저리 눌려 원래의 형채를 찾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 오면 동생은 방바닦에 오물과 눈물과 밥을 엎어 엉망이 된 상태로 울다지쳐 잠이 들어 있었다. 동생을 씻기고 물에 말은 밥으로 저녁을 때운 아이는 칭얼대는 동생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외롭고 고단한 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손은 찬바람에 갈라져 피가나고 손끝은 감각마져 사라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봄이오고 더위가 찾아오고 낙엽이 떨어지고 다시 꼬막 철이 찾아왔다. 동생도 자라 학교 갈 나이가 될 무렵 아이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접어들었다. 세상을 일찍 배운 탓에 그의 거친 손 만큼이나 마음과 행동은 억세지고 투박해져 있었다.

주변은 그에게 더 이상 고생하지 말라고 적당한 혼처를 소개했지만 어린 동생을 두고 그가 할수 있는 선택은 없다고 느꼈다. 삼십이 가까울 무렵 동생은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학비를 대느라 여전히 고단한 일상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동생만 졸업하면 그도 다른 삶을 살 것이라는 조그만 기대를 품고 그렇게 시간을 메워갔다.

그의 남편은 순둥이였다. 가난하여 그처럼 나이가 들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다가 억세고 거친 여인과 짝이 되었다. 남편은 아침 일찍 교회 종을 치고 새벽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그는 이곳저곳 건설현장의 잡부로 일하면서 얼마 되지 않는 노임을 받아 교회 헌금을 제하고는 아내에게 고스란히 가져왔다. 그 덕에 아내는 생활비를 쪼게 한푼 두푼 저축을 하며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애썼다. 아내에게 있어 남편이 교회에 내는 헌금이 늘 못마땅했고 이로 인한 다툼이 잦아졌다. 남편은 다른 모든 것에는 양보가 있어도 교회에 관해서는 아내라도 일절 양보가 없었다. 둘 사이에 자녀가 없는 탓에 쌓아 놓은 저축은 그들에게 새로운 집을 만들어 주었다. 오십하나 되던 해 일찍 어른이 되어 아이의 삶을 일어버린 여인은 폐경을 맞이했다. 문득 거울 앞에선 여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여자도 아내도 아닌 삶과의 전쟁을 치룬 전장의 병사일뿐이었다. 이웃도 친구도 없었다. 타조 발바닦 같은 손과 말라 광대뼈가 두두러진 자신의 얼굴이 무척이나 낯설고 서러웠다. 여인은 며칠째 말도 없이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이 불안해 보이고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남편은 초조하다. 울하기 그지 없는 그녀의 오십 대는 늦은 가을날처럼 앙상하고 볼품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깊은 바다 속 같은 우울한 어느날 그녀는 죽움을 생각했다. 삶에 밀려 죽음은 그녀와 너무 먼 이야기였는데 어린 아이적 죽움의 이별이 그녀의 삶을 휘감았다.

그녀는 난생처움 자신을 위해 울었다. 밤이 새도록 눈에서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남편을 따라 처움 교회를 찾은 그녀는 자신 만큼이나 외롭고 힘들고 지쳐있는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줄고 지켜보고 계셨던 그분의 따듯한 시선을 느낄수 있었다. 그날 중간에 깨지 않고 긴 밤의 평안한 잠을 청했다. 그것은 평안 이었다.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하는 기도는 자신의 삶이 복 되다라는 서툰 고백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봄꽃이 청아하다. 산이실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