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마흔 두 번째 이야기
큰나무 마흔 두 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2.01.27 0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해 한창 봄볕이 따스한 기운을 뿜을 때 장터로 나가 다섯 그루의 사과나무를 샀다. 아이들과 함께 가꾸는 채전 밭가에 어른 한발 간격을 두고 심을 때만해도 나무로써 구실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크기로 회초리 굴기에 일 미터 남짓의 높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과수원을 하는 사람들에게 팔수 없는 상품성 없는 묘목을 시장에 내다 판 것으로 제대로 자랄수 없을지도 모르는 것을 당장이라도 사과를 한바구니 딸 듯이 기대에 부풀어 땅을 파고 정성을 다해 심었다. 물도 주고 파랗게 새순이 날 때는 거름을 듬뿍 주어 성장을 도왔다. 일 년을 지나서는 서툴지만 수형을 잡기 위해 전지도 해주었다. 삼년 차에 접어들면서 꽃이 피면서 사과나무 심기의 성공을 알려 왔다. 농업기술지원센터 사이트에 들어가 사과나무 관리요령을 탐독하고 하늘을 향해 벋은 가지에 적당한 무게의 추를 만들어 달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결과지를 만들어 주었다. 첫 해 사과는 사과나무 자신의 몫이라는 조언에 따라 수확한 사과를 나무뿌리 근처를 파고 묻어 주었다. 이는 과일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인격적 배려로 과수농사를 짖는 분들의 불문율이다. 사년 차 사과는 본격적인 꽃을 피우고 나뭇가지마다 엄지만한 열매가 맺혔다. 보통 꽃눈 하나에서 여섯 송이의 꽃이 피고 여섯 개의 열매가 달리면 농부들은 가지에 한 개나 두 개정도의 열매만 남기고 모두 잘라낸다. 이를 속과 라 하는데 속과를 끝낸 나무 밑은 녹색의 구슬을 뿌려 놓은듯하다. 나무의 크기나 건강 정도에 따라 남겨두는 열매의 숫자는 틀려진다. 너무 많은 열매를 달면 나무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거나 다음해 해 걸이를 할 수 있어 농부의 주의 깊은 판단이 필요하다.

추석이 한 달 정도 지난 무렵 아이들과 노란 사각 바구니에 사과를 수확했다. 아쉬운 것은 사람의 키가 다을 만한 곳의 사과는 그 누군가에 의해 대부분 없어지고 높은 곳에 위치한 사과를 따느라 사다리에 올라서서 아이들이 사과 따는 체험을 할 수가 없었다. 사과는 바구니 다섯개를 채우고도 반 바구니나 더 딸 수 있었다. 아이들과 나는 생에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사과를 맛보았다.

다음해도 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맺어 시각적으로도 넉넉한 가을을 선사했다. 수확 무렵 아이들과 직원들에게 미리 사과를 따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주고 단지 센터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만 한두 개를 따서 선물하는 것으로 사과를 지켜 내는데 성공했다.

성공은 나눔으로 이어져 봉지에 서너 알씩 넣어 아이들의 집으로 보냈다. 센터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수확한 사과에요 라는 자랑이 봉지를 채웠다.

지난해 아이들에게 가을의 행복을 선물하던 사과나무는 심각한 병에 걸려 버렸다. 주변 향나무에서 옮겨 온다는 바이러스는 나뭇잎에 노란 반점을 만들고 끝내 검게 말라버려 더 이상 사과를 내어 주지 않았다. 꽃눈도 형성 되지 않아 올 해도 사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이 정든 나무를 베어야하는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의 정서를 생각해서 남겨두는 결정을 하고 싶지만 병들어 말라가는 나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지 않다고 판단하여 베기로 했다.

나무는 더 이상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이 겨울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 나무 밑에서 행복을 만끽했던 아이들은 예쁘게 자라 사회 속 일원이 되어 센터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불현 듯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한 사람의 생도 하나님이 정한 시간의 한계 속에서 나름의 영광과 행복을 구가하다가 정한 시간이 되면 그 원인이 병일 수도 있고 사고 일수도 또 다른 이유 일수 도 있지만 그렇게 마감의 시간에 맞이해야한다. 기억 속의 그는 누구에게는 파릇한 새싹이고 누구에게는 푸른 젊은 날이고 누구에게는 누구의 부모이고 누구에게는 초로의 노인이다. 누구의 기억 속에 어떤 모습이든 행복을 나누는 사람이었다면 그도 행복한 생애의 주인공으로 열매를 맺은 사람이다.

시절을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주님의 사람이고 싶다.

아주 시린 날 사과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산이실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