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보다 앞서는 예배
소망보다 앞서는 예배
  • 이구영
  • 승인 2022.01.0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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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 유다만 근근이 생명을 연장하고 있던 때,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심판과 위로의 메시지를 선포하며 하나님께로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여전히 우상숭배와 애굽을 의지하려 했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외치다 떠난 지 50여년이 지난 후 예레미야가 등장해서 왕궁을 중심으로 심판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미래보다는 현재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애굽을 의지하려 했습니다. 결국 나라는 강대국 바벨론에 점령당했고 사람들의 일부는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1차로 잡혀간 사람 중에 다니엘이라는 소년이 있었고, 2차로 잡혀간 사람 중에 25살 된 청년 에스겔이 있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강가 포로수용소에서 살며 기도 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부르심을 입게 됩니다.

에스겔이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왜 이 선택받은 백성들이 포로가 되고 절망 속에 살아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살아왔던 날들의 죄를 알려주십니다. 교만이라거나, 불순종,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며 살아온 죄들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로 전염병, 기근, 폭력, 전쟁, 공허함, 상대적 박탈감이 이어져 왔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돌이키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런 당부를 하십니다. 이제 포로로 끌려와 있는 사람들이라도 다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라고...

에스겔은 받은 말씀대로 심판과 회복을 선포합니다. 절망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과 소망을 전달합니다. 그 소망 중에 대표적인 환상이 37장에 나오는 마른뼈의 환상입니다. 생기가 불자 마른 뼈들 조차도 사람이 되고 큰 군대가 되듯이, 하나님의 영이 다시 그들에게 불게 될 때 회복과 소망이 넘치게 됨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니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나아가 새 생명을 얻은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성전중심의 삶을 강조하십니다.  그것이 이어지는 성전의 환상입니다. 예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교만해졌고, 불순종했고, 은혜를 잊었습니다. 예배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 행복한 날들을 살았을텐데, 예배가 소홀히 여겨지면서 소망은 절망이 되고, 미래는 현재의 쾌락과 소유로 바뀌었습니다. 마귀의 하수인이 되었고 전염병, 전쟁, 기근, 허탈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예배를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마지막까지 예배를 강조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들과 비교해 보게 됩니다. 전염병과 돈의 전쟁, 상대적 박탈감과 불평등, 빈곤을 바라봅니다. 에스겔을 통해서, 예배가 회복되어야 마른뼈들이 살아남같이 삶에 생기가 돌아오고, 넘치는 힘으로 군대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통제의 시대에 유튜브를 통한 예배일 지라도 예배가 점점 소중히 여겨지기를 기도해봅니다.

절망의 시대를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참 예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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