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보신 예수님
손해 보신 예수님
  • 이구영
  • 승인 2021.12.3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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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얼마나 좋으셨는지 성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나열합니다. 특히 모든 창조를 마치신 후에는 그 조화와 완성이 너무 좋으셔서 ‘심히 좋았더라’고 표현합니다. ‘심히’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오드’ 는 ‘풍부하다’ ‘크다’ ‘심하다’ 등으로도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양(量)과 질(質)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아주 만족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곳에 아담과 하와가 살았습니다. 관리인이었습니다. 소유자가 아니었습니다. 소유자는 하나님이시고 아담과 하와는 관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습니다. 관리자가 소유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들에게 품어서는 안 되는 생각을 가지게 하고, 부려서는 안 되는 욕심을 부리게 하고,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게 합니다. 욕심을 품게 합니다. 여기서부터 죄가 시작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자! 이 과정에서 누가 손해를 보았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선악과는 물론,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잡은 짐승도 손해보셨고, 아담과 하와도 떠나보내야 하셨습니다. ‘사랑’ 이라는 말의 또 다른 뜻은 손해 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손해 보신 이야기입니다. 죄는 아담과 하와가 지었는데, 하나님의 소유인 선악과를 손해 보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또 짐승까지 손해 보십니다.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간들의 욕심과 죄는 더 깊어져 갑니다. 그래서 죄에 죄를 더하는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또 손해를 결심하시게 됩니다.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십니다. 신이 인간이 되셨고, 사람으로 사시다가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손해 보시면서 우리를 살리려 하셨습니다. 아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고 스스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십니 다. 손해 보시기 위해서... 절망하는 나에게 소망을 주시려고, 분노하는 나에게 용서를 주시려고, 미워하는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셨고, 보여주셨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시나요? 나 때문에 왕창 손해 보시고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어느 날 이게 믿어졌습니다. 아!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손해 보면서... 사랑하다는 것은 그래서 손해 볼 줄 아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아낌없이... 손해 보면서 아까우면 사랑 아닙니다. 손해 보면서 본전 생각나면 사랑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면서 아까우면 사랑 아닙니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망가뜨린 우리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잡아주시더니 나중에는 아들도 포기하셨습니다. 사랑하니까...

성탄절은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손해 봄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생일! 그분의 생일이 되면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처럼 손해 보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마귀를 닮아서 욕심껏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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