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의 내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촌의 내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 남광현
  • 승인 2021.06.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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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해마다 경험하는 일 중 하나가 계절의 변화를 다르게 느낀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내륙으로 불어치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거름 없이 마주하다 보면 찬 기운이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 어장이 한참 진행되는 5월, 더위가 느껴지는 계절임에도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의 복장은 여전히 겨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촌은 겨울 다음에 봄이 아니라 여름이다. 적어도 필자가 경험하는 어촌의 계절이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6월 풍경은 또 다르다. 어부들의 복장에서 이른 여름을 마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 나가면 갑판 위에서 하는 일이 다반사이기에 보통 물에 젖지 않는 비닐 앞치마나 가슴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를 입고 작업을 한다. 이렇다 보니 조금만 더워도 일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하루에 옷을 3번 이상 갈아입고 어장 일을 한다고들 말한다. 참으로 고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부들의 복장에서 어촌은 겨울 다음에 여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6월 중순이 넘어서면 봄 어장이 마무리되어 간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포구를 바삐 오가던 어선들의 출입이 조금씩 여유를 보인다. 이때가 되면 마을은 두 가지 일들을 준비하느라 뭍에서의 경쟁이 시작된다. 첫째는 바다에 넣었던 어장을 꺼내어 정리할 땅을 준비하는 것이고, 둘째는 장마와 태풍에 대비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그물을 바다에서 꺼낸 채로 그대로 쌓아두었다. 그러하다 보니 그물 안에 버려지지 않은 생선들과 해초류 등이 그대로 썩으면서 아주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도한다. 어촌을 찾는 외지인들 대부분이 어촌냄새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 냄새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비릿하면서 역한 냄새를 말한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수 있지만, 필자도 처음 부임해 왔을 때 이 냄새 때문에 마을에 내려가면 오래 머물지 못하고 교회로 올라오곤 했었다. 이 냄새는 여름을 지내면서 조금씩 사라진다. 장맛비로 그물이 씻겨지기도 하고 쌓인 채로 마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부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어서 바다에서 그물을 가지고 오면 바로 씻는다. 그리고 내년 어장을 위해 잘 정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도 그 냄새는 여전하다. 바닷가 어촌에서 이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그곳은 분명 고기잡이 어부들이 살지 않는 어촌일 것이다. 그물이 정리되면 어부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어선을 보수한다. 이 시기에는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간단한 조치만 취하게 된다. 정밀한 보수는 보통 태풍이 지나간 뒤 8월 초순부터 하게 된다. 이것도 한편의 그림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어선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배를 육지로 올려놓던지, 아니면 얕은 바다로 이동을 시키게 된다. 그리고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배 밑 부분을 수리하게 된다. 한 철을 부지런히 어부들과 바다를 누비느라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고 깨지고 바다 이끼로 뒤덮인 부위를 메우고 때우고 제거하고 페인트로 예쁘게 새 단장을 하고 가을 만선을 준비하게 된다.

마을에서 어장 철이 시작될 무렵처럼 어수선하고 바빠지는 날들이 바로 이때이기도 하다. 바다에 넣어 놓았던 여러형태의 그물들이 다시 뭍으로 올라오는 과정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출어시점도 같지만 파송치는(어장을 마치고 정리한다는 의미로 어부들 사이에 사용되는 용어: 필자 주) 시기도 거의 같기 때문이다. 봄 어장은 대부분 활어를 잡아야 하기에 길이가 약 60m, 폭이 6m 이상 되는 그물이 배 한 척당 기본 25 틀, 많은 경우는 60 틀이 넘는다. 마을 주민의 어선들이 바다에서 올려놓은 그물을 보면 바다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저 수많은 그물이 바닷속에 들어가 수없이 많은 어종의 활어들을 수확하는데 바다는 매년 끊임없이 어부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한없고 아낌없이 내어 주고도 다음 해를 기대하게 만드는 바다의 마음은 곧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마을 곳곳에 거두어 올린 그물은 어촌의 내음이 된다. 쌓아 놓은 그물들을 보면 작은 언덕을 방불케 한다. 그만큼 어촌의 내음은 짙어지고 어촌을 찾는 어린아이들은 맞잡은 엄마의 손을 뿌리치며 코를 부여잡는다. 이것이 어촌이고, 어촌이면 이 내음이 마땅히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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