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의 이장선거
어촌의 이장선거
  • 남광현
  • 승인 2021.07.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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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그렇게 차분하던 마을 이장님의 안내방송 목소리가 오늘따라 격양되어 있음을 느낄 정도로 초여름 어촌이 어수선해졌다. 다름 아닌 이장선거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00리 주민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오늘 오후 1시부터 마을회관에서 이장선거가 있으니 각 가정에서는 주민증을 지참하시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투표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마을 안내용 스피커 성능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메마른 여름 날씨 탓인지 이장님의 방송 소리가 온 마을에 쩌렁쩌렁 울린다. 다른 마을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이장 임기를 4년으로 하고 3번 연임할 수 있는 조건으로 이장을 선출한다. 필자는 19년 동안 3번째 다른 이장을 선출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한번 선출된 이장은 3번까지 12년을 연임했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는 4년마다 치러진다. 선거 준비를 위해 선거관리 위원회가 구성되는데 대부분 마을 개발위원회(이장 중심) 회원들에 의해 조직된다. 이 상황부터가 예민해지는 듯 보인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선거관리위원들이 누구 편인가에 따라 종종 불미스럽게 여겨지는 상황들이 발생 되기 때문이다. 직전 선거에서 사실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일이지만 선거 후, 후문 가운데 투표권자 숫자보다 더 많은 표가 검표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선거관리위원들 전원이 전 이장 사람들이었고 개표 진행도 그분들에 의해 진행됨으로 흐지부지 넘어가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말들이 오가기에 교회도 조심하는 모습들이 역력하다. 교우분들 중에 지금까지 이장에 나선분들은 없지만 후보로 언급되는 분들은 여럿 있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는 듯하다.

투표권자 선정도 기준이 모호할 때가 여러 번이었다. 마을 주민 개인당 1표 행사가 아니라 한 가정에 1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투표권을 부여하지만 외지인들은? (순전히 마을 토박이들의 기준에 의함-필자의 견해임) 철저하게 배제하여 권한을 주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투표권자가 일신상의 이유로 투표 참여가 불가하면 가족 중에 아무나 와서 투표할 수 있다. 손자도 가능하다. 그러나 주민등록상 현 거주지가 이곳이어도 외지인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오래도록 마을에 머물지 않고 언젠가 떠날 사람들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19년 전에는 이 모습이 너무 낯설었으며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필자도 당연한 듯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학습의 효과인듯하다. 두 분이 이장 후보 등록을 했노라고 교우분들을 통해 들었고 어느 날 그중 한 후보자가 교회로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했다. 이번 선거는 12년 동안 이장을 지내셨던 분이 자리를 내놓는 선거가 된 것이고 따라서 다른 두 후보가 새로운 이장직을 수행하려고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래도 교회와의 관계가 나름 좋았다고 생각하신 분이 먼저 목사를 찾아와 이번만큼은 현 이장의 반대쪽인 자신이 되어야 마을이 발전할 수 있다는 요지로 말씀하셨다. 한마디로 교우분들의 표심을 자신에게 모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감사하게도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다양한 표심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이미 알려져 있다. 41년 동안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이장선거를 해 본 일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우분들이 여, 야, 그리고 어느 쪽에도 속하기 싫어하는 분들이 골고루 있어 이장선거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서도 각 각의 색깔을 평생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어촌에 살면서 경험하는 것인데 이런 모습은 생존하고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어선을 가지고 바다에 나가면 포구를 떠나는 순간부터 모든 결정과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때론 방향을 잘못 잡아 빈 배로 돌아올 수도 있고 때론 날씨를 경험에 의한 짐작으로 결정하고 나가서 위험한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목숨을 담보로 한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자신의 주장과 결정은 수확과 생명에 직결될 수밖에 없기에 양보할 수 없는 것이리라. 삶이 이러하다 보니 후보자들의 생각처럼 교회공동체가 어느 한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장선거와 신앙공동체? 아무런 연계성이 없어 보임에도 어촌 마을에 있는 교회는 또 한 번의 어려운 숙제를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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