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알기에...
은혜를 알기에...
  • 이구영
  • 승인 2021.03.26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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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교회는 잘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툼도 많았고, 시기도 많았습니다.
혼란스러운 교회!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삶을 닮으려고 하지 않고 교회가 무슨 세상 사람들의 자랑 터인 것처럼 혼란스러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바울 목사님이 고린도교회를 사랑하며 고린도교회가 온전히 세워지기를 소원하면서 아픈 마음으로 쓴 편지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입니다. 이 고린도전서의 맨 끝부분에서 바울 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고전 15:10] 새번역
“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왜 바울 목사님이 고린도전서에 이 고백을 하시고 계시는지? 로마서에서는 이런 고백을 하지 않습니다. 빌레몬서에도 이런 고백을 하지 않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바울 목사님을 통해서 그 당시의 고린도교회와 오늘 우리들의 교회에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모든 자랑이나 다툼! 다른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것과 비난하는 것. 끌어 내리는 것과 무시하는 것 사이의 모든 갈등은 자기 견적을 잘 못 내는 것에서 비롯됨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다툼이나 갈등은 사실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내가 한 것처럼 자기 의를 드러낼 때 생기는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기 견적을 잘 내면 싸울 일이 없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부유함이나 성실함, 혹은 자랑할 만한 모든 것들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모든 넉넉함이 내 노력일까요?

① 싸움에 능해서, 전쟁을 잘해서 승전보를 많이 울려서 훈장을 많이 받은 군인들이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전쟁을 잘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전략이 좋아서 / 내가 훈련 을 많이 받아서 일수도 있지만 그 체력, 그 근육, 그 동지들, 승리에 좋은 지형들, 좋은 계략을 알려준 참모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00% 내가 이룬 것이 아님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내가 심지 않은 무엇인가가 있다고 하는 말씀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② 공부를 잘해서 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물론 나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의 아이큐, 내 유전인자가 있음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선천적인 것, 세상 말로 재수나 운, 우리들의 용어로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고린도 교인들이 이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③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머리도 많이 썼고, 바빴고 힘들었고 외롭게 버텼습니다. 잠자야 할 때 안 잤고, 놀아야 할 때 못 놀았습니다.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공했지만 또 따지고 보면 세상 말로 운대가 맞았습니다. 재수가 좋았습니다.

그때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성공 뒤에는 내가 한 것 보다 내가 하지 않은 요소들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내가 누구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자랑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겸손하게 섬기고 낮추고 주시는 사명에 따라 그 사명을 감당하며 살 뿐입니다. 이 은혜를 알기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보답이 열심히 하는 일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성실하게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의 출발이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에서부터 이었습니다.

[고전 15:10] 메시지 성경
“그런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은혜로우시고 한없이 너그러우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입니다. 나는 그분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다른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내가 한 일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할 일을 주시고 감당할 힘도 주셨기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사와 보답의 차원이었고, 사명의 차원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닮고 싶은 바울 목사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은혜 때문에 웃고, 일 때문에 웃고, 천국의 상급 때문에 또 웃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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