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과 통보
서원과 통보
  • 이구영
  • 승인 2021.03.19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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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기도는 지켜야 하는 중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내가 서원한 그 내용이 하나님의 뜻에 맞느냐? 또 내 서원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느냐 하는 것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서원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서원은 반드시 쌍방 간에 합의로서 이루어집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한나입니다. 아기를 못 낳던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합니다. 아이를 낳게 해 주시면 그 아이를 하나님께 드려 나실인이 되게 하겠다는 서원이었습니다.
[삼상 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엘리 목사님을 통하여 응답해 주셨습니다.
[삼상 1:17-18]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하나님과 충분한 대화가 된 것입니다. 서원했고, 응답하셨고,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게 서원기도입니다. 이런 서원기도는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신 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한나는 기쁨을 가지고 돌아가서 그 서원을 지켰고, 하나님께서도 응답의 복을 주셨습니다. 한나에게 사무엘 외에도 더 많은 자녀를 주셨습니다. 이게 서원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서원해야 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충분히 공감하는 가운데 서원이 이루어지고 지켜집니다. 또, 아내나 남편이 배우자의 허락 없이 하나님께 서원했거나, 혹은 자녀가 부모의 동의 없이 서원한 것이면 언제라도 무효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게 서원입니다. 그런데 간혹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통보해 놓고 그것을 마치 참 서원인 것처럼 착각하고 힘들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보곤 합니다. 입다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사사 시대에 암몬 족속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사사 입다를 기억합니다. 입다가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입다는 믿음은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런데 무지했습니다. 믿기는 믿는데 너무 무식하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힘들고 남도 힘들게 했습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들의 슬픔이 있습니다. 암몬사람들과 전쟁을 하러 가는데 꼭 이기고 싶었습니다. 자기를 무시하던 배다른 형들이나 길르앗의 부유층, 잘난 사람들 앞에서 폼을 잡고 싶었습니다. 이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에 해 주시면 제가 집에 돌아올 때 저를 제일 먼저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쉬운성경 삿 11:31] 저는 여호와께 태워 드리는 제물인 번제물을 바치겠습니다. 제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 때, 제 집에서 저를 맞으러 나오는 첫 번째 사람을 여호와께 바치겠습니다. 번제로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습니다

굳이 이런 약속을 해야 했을까요? 성령이 임하셨고, 사사로 부름을 받았는데 그분이 책임져 주실 것인데 왜 이런 약속을 해야 했을까요? 자신이 없는 것이지요. 자꾸 믿음이 식어 갑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이방 신들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며 서원하던 풍습이 생각났습니다. 불량한 사람들하고 놀면서 배우고 몸에 익힌 못된 세상 풍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런 약속을 합니다. 승리를 주시면 사람을 바치겠다고!!
결국, 그는 무남독녀 외딸을 죽이게 되었고, 자신도 6년이 지난 후에 죽었습니다. 딸도 죽이고 자신도 일찍 죽었습니다. 그릇된 서원의 결과요, 무지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태워죽이던 이방 사람들의 제사를 엄격히 금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입다는 하나님의 참 마음을 몰랐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서원에 대하여 미안함이 있거나, 죄의식이 생기거든 그 서원을 굳이 지키려고 하지 말고 ‘속전’이라고 불리는 예물을 어느 정도 드려서 죄의식을 씻으라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입다는 영웅심에, 열등감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자녀를 죽이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죄악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도 않을 것 같은 그릇된 서원들이나 내 욕심을 이루려는 영웅심에 근거한 일방적인 통보를 서원과 혼동하고 삶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보곤 합니다.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서원이 아니라 그것은 일방적인 통보입니다. 지켜서는 해가 되는 것들입니다. 어리석음의 시대에 참 지혜를 간구하게 됩니다.

서원기도 역시 서원이 통보되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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