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 밖의 찾아가는 설교
예배당 밖의 찾아가는 설교
  • 민돈원
  • 승인 2019.03.0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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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전인 2017.2.25 ‘겹초상을 겹경사로 바꾸자’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정확히 2년 전인 2월이다. 그런데 금년 들어 거의 비슷한 날짜에 역시 우리교회 성도 가정에 2년 전과 같이 거의 10여일 간격으로 겹초상이 있었다. 한 분은 지난 2주전인 2. 22이고 또 한 분은 그로부터 한 주일 후인 3.2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별세하신 두 분은 모두 1927년생(남)이고 1926년생(여)이셨으니 93세, 94세인 셈이다.

우리나라 남 여 평균 연령을 훌쩍 넘긴 근래에도 보기 드문 장수한 분들이다.

특별히 마지막까지 이 두 분들은 자녀들 중 장남과 며느리가 줄곧 모셔왔으니 자식의 두터운 덕을 입었다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장남 부부의 지극정성으로 모신 그들의 효성은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는 가정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분(93,남)은 비록 신앙생활은 못하셨지만 장남과 큰 자부로서 우리교회에 나오는 권사님이 마지막 운명을 지켜보았다. 2주전 목요일 자정이 되어 갈 무렵 위독하다는 전화를 우리교회 상조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난 후 다음 날 금요일 오후 별세한 것이다.

교회장으로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장례절차를 준비에 들어갔다. 첫째 날 성도들과 함께 2번의 조문예식을 인도했다.

이 가정은 아들들만 5형제였다. 결혼한 네 아들의 손자 손녀, 그리고 결혼한 손녀들 중에서 딸린 손서들까지 모든 예식이 있을 때마다 거의 모두 참석했다. 그들의 모습도 매우 진지했다. 입관예식이 있던 둘째 날과 그날 저녁 조문예식에도 역시 유족들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인도해 왔던 중에 손꼽을 만큼 사뭇 달랐다.

3일이 지난 후 권사님 부부가 찾아와 잠시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장례기간 동안의 5형제들에게 있었던 이런 저런 미담소식을 전하면서 이번 장례가 슬픔이 아닌 가족들 간에 애정과 단합과 평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믿지 않는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교회장으로 치른 과정을 직접 보고 듣고 몸으로 체득하면서 ‘나도 신앙생활 잘 하겠다.’는 분도 있었고 ‘찬양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다. 찬양을 좀 배우고 싶다.’는 분도 있었고 ‘기독교식으로 하니 너무 좋았다’는 등 장례식이 육신적인 슬픔을 떠나 신앙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인가귀도의 선한 역사가 있었다는 흐뭇한 후담에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에서 이번 주 월요일까지 다시 한 주 만에 치른 장례식 역시 이른바 호상이었다. 별세하신 집사님(94세, 여)은 슬하에 5남2녀를 두신 분이었다. 고인이 되신 이 집사님 역시 장남인 권사님 부부가 줄곧 세상 떠나시기 직전까지 극진히 봉양하며 받들어 섬기신 효심이 지극한 부부이시다. 큰 며느리 되신 집사님 말씀으로는 최근에는 몸소 누워 거동을 할 수 없어 거의 24시간 손발이 되다 시피하면서도 노모를 한 번도 요양원에 보낼 생각은 살아생전 꿈에도 하지 않으셨다고 할 만큼 50여년을 한결같이 감동적인 봉양을 해 오신 너무 귀한 집사님이다.

이 가정도 역시 조문예식 두 번을 비롯하여 입관예식, 장례예식, 화장예식, 봉안예식에 이르기까지 집례하면서 대다수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형제들인지라 교회장으로 매우 은혜스럽게 치러졌다. 특히 주위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것 중의 하나가 대가족의 위력이 어떤 것인지를 장례식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7남매에서 출생한 후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들은 바로는 5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인구출산율이 거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최근 사회로는 이런 장례식을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장례를 집례하면서 몇 가지를 깨닫는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온 맘 다해 섬기는 천부효도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살았을 때 내 육친의 부모님께 마지막까지 효도하는 친부효도도 동시에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장례식을 적어도 교회장으로 할 경우 담임목사는 교회안의 설교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배당 밖, 장외의 찾아가는 설교, 이를테면 교회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이들, 또는 떠나 있는 이들에게 주님을 구주로 믿게 하는 최고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말씀을 정성을 다해 준비해야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해 보았다.

그리고 교회가 주관하는 장례식에 임하는 성도들의 경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전7:2a)라고 하는 성경말씀과 같이 매 시간마다 유족들을 위로하는 차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슬픈 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죽음을 정복하신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현장감 있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매시간 마다 모든 내 사사로운 일을 뒤로하고 마음을 같이하여 힘껏 최대한 참여하는 집중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 때 유족들과 이를 지켜보는 조문객들에게도 어느 날 힘들고 괴로울 때 ‘아! 교회가 마지막 희망이로구나! 그래, 예수님이 내 인생의 해답이구나!’ 라고 하는 성령의 임재로 주시는 감동이 스스로에게 답을 찾도록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군가에게는 임하지 않겠는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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