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銅像)
동상(銅像)
  • 김재용
  • 승인 2018.09.2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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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목회 칼럼 25

종교개혁지 500년을 준비하던 2014년에 종교개혁 운동이 있었던 역사적 장소를 탐방하게 되었다. 여행 중에 보니 수많은 동상이 광장과 역사적 유물이 있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러 유럽의 발칸 지역에 와서도 돌아보니 역사적 유물과 함께 동상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또 새로운 것은 알바니아 공산권에서 민주주의로 변화된 국가는 통제적인 모습이 함께 공존했고 다른 국가들 보다 더 많은 동상들이 있었다. 바울의 선교여행과 그의 노력에 의해 설립된 교회를 기념하고자 바울 기념 교회도 곳곳에 있었다.

그 와중에 그리스 정교회의 모습과 역동적인 감리교 선교사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동상이 주는 의미를 재해석 해 보았다. 여행 중에 만나는 박물관에 들어가 보면, 유산인 성경책과 자료들이 유리 자료 안에 많은 성경책들이 유산으로 보관되어 있었다. 유리 진열대 안에 있는 성경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좋은 전통도 오래되어 유리 상자 안에 보관되는 성경이 되면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유적 보관을 위해 만들어진 유리진열대 안에 있어야 할 유물에 대한 의미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현재 교회의 성경이 집이나 교회, 삶 속에서 유리진열대 안에 동상처럼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경이라면, 이것은 화석화되고 고대 사회를 지배하고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선교했던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생활이 유물인 사람이 있다. 과거에 존재했고 유리 진열대 안에 있는 존재가 유물적인 존재라고 본다. 그러나 오래 되어도 그런 진열대가 아니라 계속 사용되는 성경 같이 현존하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때 살아있는 존재가 더 멋지지 않을까? 노년의 삶은 유리 진열대에 들어간 것으로 착각하거나, 동상으로 기념비적인 상징물로 남아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화석화 된 신앙은 화석이지 신앙이 아니다. 종종 노년기에 화석의 길을 걷는 신앙인들을 보게 된다. 젊었을 때 헌신하고 봉사한 것으로 만족하고 일찍이 기념비적인 동상이 되려고 뒷짐 지는 분들도 보았다. 그러나 노년에도 생활하는 삶이 있고, 믿음의 고백은 날마다 새로운 것이다. 유리 진열장에 있는 고 성경책이 읽혀지지도 않는 상황에 무슨 가치를 느끼게 되겠는가? 스스로 노년이라는 유리 진열장에 갇히려 하지 말고, 계속 신선한 길을 가는 자세로 생활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노년기의 삶은 조각상으로 기억에 남거나, 유리 진열대 안에 자리 잡고 오랜 세월 방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 삶은 손에 잡히고 읽혀지는 성경책과 같은 존재인지 유리관 속에 고이 보관되는 읽혀지지 않는 성경인지? 교회에서도 후배들에게 박제된 듯 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에게 교훈과 동력을 줄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노년은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이 과정에 손을 놓으면 광장에 세워지는 동상이 되고 만다. 과거에 유명한 것을 기념하려고 노력하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그 인물은 의미가 없다. 은퇴 교역자, 은퇴 평신도 모두가 은퇴라는 말로 유리 진열대 안으로 숨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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