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자수 선물인 최후의 만찬
보석자수 선물인 최후의 만찬
  • 민돈원
  • 승인 2017.06.2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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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 제작한 보석자수 최후의 만찬

르네상스 시대 3대 화가를 일컬어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를 꼽는다. 이들 모두는 이탈리아에서 출생하고 활동한 15세기의 거장들이다. 이중에 다른 두 화가보다는 한 세대를 먼저 태어난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대표적으로 알려진 작품으로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믿는 사람에게 관심하는 그림이지만 나아가서 믿지 않는 이들까지도 대부분 익숙하리라 여겨지는 성화를 들라고 한다면 ‘최후의 만찬’이 아닐까 싶다.

이 성화의 내용은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잘 들여다보면 제 각기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12명의 제자들을 그리고 있다. 그런 12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앞에 두고 있는 장면이다. 그 12명의 제자들은 3명씩 4그룹으로 짝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예수님을 중앙에 두고 좌우측에 각각 6명, 즉 두 그룹씩 배치한 구도를 보이고 있다.

이 성화를 성도들 가정을 심방하다보면 더러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화의 기본 틀은 똑같지만 문제는 그 성화를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원하는 경우 기독교용품점에서 액자로 된 성화를 얼마든지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성화를 그렇게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이 아니라 지극정성을 다해 만든 한 성도로부터 매우 값진 선물을 받았다. 지난 주 이 성화를 그간 직접 손수 만든 103cmX50cm크기의 보석 공예품 성화를 가지고 온 것이다. 이 성도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지난 2주 이상을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온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 작품은 더욱이 첫 작품이란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누구에게 드릴까 하다 자신이 출석하는 담임목사 가정에 드리기로 해서 아침에 가져 왔다는 것이다.

얼마나 그 마음이 아름다운가! 최근 가정에 어려움도 있었고 이렇듯 큰 변화도 있던 터라 주위에 알고 있는 한 지인이 이 성도에게 최후의 만찬에 관한 공예품을 한번 만들면서 마음을 쏟아보라고 하는 권유를 듣고 시작했다고 한다.
그림이 아니고 큐빅 공예품인지라 보석 하나하나를 비롯하여 해당색상에 따른 각각의 모자이크를 일일이 다 맞추고 붙여야 했을 텐데 얼마나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을까를 생각해 보니 그 간의 수고와 정성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성도의 생산적인 수고와 흘린 땀을 생각하니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 빨리 찾아온 최근 더위를 식히고도 남도록 시원케 해주는 잔잔한 감동이었다.

이와는 다른 미담이긴 하지만 이전에 목회했던 교회에서 그 때도 매우 센스있는 권사님 한분을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나의 설교 중에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사람의 의미와 하나님의 말씀이 생수와 같이 흘러 나리라는 의미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면 좋겠다 해서 옛날 시골에 펌프우물을 연상하여 그런 마중물 펌프 소품을 어디서 구입할 수 없을까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 소품을 강단에 설치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전했다. 그러자 이 말을 잘 귀담아 들은 한 권사님이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신속하게 반응하여 어느 꽃집에 가서 그 멋진 소품을 구입하여 온 적이 있다. 지금도 그분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고 현재 그 소품이 강단에 설치 되어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영혼을 움직이고 감동케 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영혼에 신선한 감동을 주는 일은 생각보다 먼데 있지 않다. 우리가 접하는 생활 공간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번 귀한 성도가 마음을 다하고 온 정성을 기울여 제작한 보석 자수 최후의 만찬 선물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시작한 일이 그 성도에게는 보람 있고 기쁜 일이 되었을 것 같고, 받는 나에게는 큰 기쁨과 고마움이 넘쳐 집에 걸어놓고 그 가정을 위해 늘 기억하고 기도할 수 있는 거리가 생기도록 했으니 그 성도가 얼마나 현명한 선택을 한 건가!

더욱이 그 속에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목회자와 성도의 모습이 지속적으로 오버랩(overlap) 될 의미 있는 성화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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