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하다! 연발...
참 신기하다! 연발...
  • 민돈원
  • 승인 2016.03.2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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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아내가 심심치 않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 중의 하나가 ‘참 신기하다...’ 라는 말이다. 무엇이 그토록 신기한고 했더니 성도들이 때로는 알게 모르게 거의 매일마다 무어라도 있으면 가지고 오거나 우리가 집에 없을 때는 문 앞에 가져다 놓고 간다는 것이다. 몇 몇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교회마다 마음 따뜻한 분들의 사랑이 항상 교회마다 있었음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어느 목회자 이건 간에 이런 미담이야 섬기는 교회에서 어렵지 않게 경험하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성도들의 마음에서 흠뻑 묻어 나오는 사랑의 손길들이다.

그러면서 문득 오래전 읽었던 19세기 톨스토이의 단편작인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여기서 다루는 3가지 질문은 2세기를 지난 우리들에게 여전히 던지는 질문이요, 동시에 그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보편적 가치로서의 자세이어야 함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 3가지 중 첫째 질문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사랑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사람에게 알도록 허락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죽음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세 번째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건데도 톨스토이가 19세기에 당시 시대를 향해 글로 외쳤던 그 호소는 문명이 발달된 오늘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어쩌면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 주된 이유는 언필칭 뜻있는 혹자들은 물질중시, 극단적 이기주의로 인한 인간경시와 절대 가치 부정의 풍조라고 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박한 사회와는 달리 목회하는 현장에서 건질 수 있는 사심 없고 조건 없이 내주고 싶은 사랑을 보는 듯하여 사람 사는 맛이 나고 목회자와 성도의 교감이 이런 것들과 함께 여물어 감을 부인할 수 없다.

내 경우 목회하면서 어느 순간 내 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들어다 보았더니 값이 나가는 것들의 거의 모두가 매달 받는 사례비 가지고 산 것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례비를 어디에 쓰겠는가? 내 기억으로는 외부에서 어쩌다 받는 수입을 교회외에 나와 가족을 위해 써 본 경험이 나지 않는다. 이런 나에 대해 하나님의 손이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는 간증이 있다. 예컨대 지금 신고 있는 캐주얼화, 단화 등을 비롯하여 양복도, 목회자 셔츠도, 가운도, 그리고 안경도, 더 나아가 아내의 옷과 아들의 고가의 옷과 가방까지도 성도들의 사랑의 손길을 통한 흔적들이 곳곳에 배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최근 천사 같은 손길들을 통해 베풀어지는 음식, 과일을 나열하자면 가지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지극정성으로 대접하는 손길이 줄줄이다.

목회자는 생명 걸고 말씀을 준비하고 진액을 쏟아 기도로 성도들의 가정 가정을 위해 마땅히 구할 것을 매일 무릎으로 주님께 나아가 아뢰고 그리고 때론 전화로 아니면 직접 몸으로 찾아가 격려하고 위로하고 관심을 보여주는 그런 사랑이 물 흐르듯이 막힘이 없으면 성도들이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것 같다. 이 자연스런 순환이 무슨 일로든지 일단 막히거나 끊어지면 모름지기 목회자에게는 가장 고통이요 슬픔이다.

빈집의 특징은 허술하고 싸늘하여 불청객이 잦다. 이유는 관리가 안되고 찾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고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도 그렇다. 교회는 수시로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예배하는 일로, 이 모임 저 모임 기관별로 모이느라고, 전도 하느라고, 기도하는 사람들로 쉴새없는 교회가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목사의 사택도 멀리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교회 안에 있기에 수시로 출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떤 분들은 가급적 사택이 교회와 떨어져 있는 것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위치하든 떨어져 있든 성도들과 목회자의 사랑의 발길은 잦을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

성도들이 목회자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만 먹고 자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것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목회자의 관심과 사랑과 인정을 받고 사는 것을 더 바라는 분들도 있음을 본다. 그런데 마음이 상하면 이런 관계가 금이 가고 교감에 적신호가 켜진다. 목회자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즉 우선은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려는 순종에 목회자는 최고의 보람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목회자 가정을 돌보는 인간적인 배려와 돌봄이 기도하는 것 못지않게 큰 힘을 얻어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교회 목양이야말로 전형적인 쌍방통행의 살아있는 증거의 실제 현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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