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와 함께 한 심방소회(尋訪所懷)
유모차와 함께 한 심방소회(尋訪所懷)
  • 민돈원
  • 승인 2016.03.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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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교마다 가정방문이 있었다. 선생님들이 가정을 방문해서 부모님을 만나 가르치는 학생에 대해 더 잘 파악하여 가르치기 위한 관심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런 공식적인 가정방문은 사라졌다. 그 때는 물론 촌지라는 부정적인 말도 생소한 말이었다. 선생님과 제자 사이는 존경과 사랑으로 맺어져 있었고 넘을 수 없는 그 무언가 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타깝게도 이런 것들이 아득한 추억 속으로 묻히어져 간지 오래다.

그런 학교 선생님들의 가정방문과도 같은 좋은 역사가 예나 지금이나 지속되는 곳이 있는데 바로 목회 현장인 교회이다. 지난 3주간에 걸쳐 부임 및 춘계 대 심방을 통해 대부분의 가정을 방문하여 가정별로 40분~1시간 가량 주신 말씀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나누는 귀한 시간이었다.

‘심방’(尋訪)이란 한자어의 뜻풀이를 보면 ‘찾을 심, 찾을 방’이다. 순 우리말로 ‘찾아가서 만나다’란 의미이다.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사람을 찾아가서 만나고 혹은 가르치시고 혹은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데 기인한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이고 사람을 대신하는 자동화 사회라고 하지만 기계적인 삶으로는 복잡한 삶의 문제를 해석해 내는 데는 풀어 낼 수 없는 한계성이 있을 따름이다. 오히려 지금은 공감의 시대이고 감각적인 터치가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도 크게 작용하는 시대이다.

하물며 살리는 것은 영이요,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더욱이 목회자와 성도가 서로 교감을 갖고 동시에 위로부터 임하는 신적터치(Heavenly Touch)를 경험하는 일이 필수이다. 그 때에 진정한 신앙의 비밀을 알 수 있고 감동과 감격을 가짐으로써 매일매일 기쁨과 의욕적인 힘으로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예배를 통해서, 또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이 지면에서 언급하고 있는 심방을 통해 이루어짐을 본다.

심방하는 가정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 가정마다 주시는 말씀이 어찌 그리 내가 생각할 때도 신기하리만치 새롭고 할 말들이 그리 줄줄 떠오르는지 사실 뒷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시간상 다 못하고 다른 가정으로 옮기곤 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편 이제 14개월 된 늦둥이까지 동원되어야 하는 심방이기에 그를 유모차에 태워 밀고 가까운 거리를 다니는 심방은 매우 값진 추억으로 남는다. 이렇게 하루 종일 심방하고 돌아오면 몸의 힘은 빠지긴 했지만 심방을 통해 주는 기쁨은 어디에도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이는 마치 마음에도 없는 불편한 사람과 단 몇 분일지라도 함께하는 것은 지루하고 고역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수 일을 동행할지라도 더 같이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원리이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기에 7년동안 라반의 집에서 양을 치며 섬겼으나 며칠같이 여겼다는 뜻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게다.(창29:20)

여러 가정 중 장로님 가정의 경우는 오후 일찍 심방하게 된 이유로 함께 사는 자녀들을 비롯한 모든 가족이 참석 못해 아쉬움이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장로님이 다시 심방했으면 좋겠다고 하시기에 마지막 속장님 댁 심방과 그곳에서 손수 만든 저녁식사까지 마친 후 3남매가 퇴근하고 다 모인가운데 9시 무렵에 재차 원하여 심방하는 일 역시 내게도 기쁨이었다.

어느 권사님 가정은 이번 주 새로 다시 출석하기 시작한 남편이 외출했다가도 심방시간에 맞춰 오는 분도 있었다. 참 고마웠다. 마음이 통했고 그 분의 말대로 교회가 그냥 생각만 해도 좋기 때문이리라.

어떤 분은 8세때 시력을 잃은 이후 시각 장애인이 된 분인데 주일마다 교인들의 도움을 받아 예배드리고 이번 심방에도 기쁜 모습으로 심방을 준비한 것을 보면서 그 자체가 감동이고 감사이다.

가정마다 미리 펴놓은 예배상위에 정성스럽게 준비한 예물, 그리고 주신 말씀 등을 듣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 희망을 보게 되어 고마울 따름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출입하던 사립문에서 아파트 개인자물쇠를 야무지게 잠그고도 모자라 들어오는 초입부터 경비를 두고 또 다시 외부인은 출입 못하게 만들어진 오늘날 주택문화, 이것을 뚫을 수 있는 가족 이외 유일한 방법은 그곳에 살고 있는 교인가족 심방으로만이 가능하다. 심방은 굳게 잠긴 수 겹의 단단한 철문을 열고 심령의 문도 열며 급기야 하늘 문을 여는 길로 가는 예행연습을 하는 기회요 시간이라고 여겨진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교회가 지금 행하는 심방은 육아법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마치 엄마의 맨살과 곱디고운 아이의 살결사이의 스킨십과 같은 목회자와 성도들간의 영적교감이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건강하고 은혜 받은 신앙인은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할 필요한 목회적 돌봄이요 매우 값진 만남으로 이어져 가야 할 덕목이다.

이번 심방에 가정마다 안내하느라 애쓰고 차량으로 인도해 주신 속회 인도자분들의 고마움이 크기에 지면을 통해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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