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너희는
그러나 너희는
  • 이구영
  • 승인 2013.04.04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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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사람들이 많이 흩어졌습니다.
무슨 손해가 있어도 의리를 지키겠다던 사람들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하던 사람들도 도망을 쳤습니다. 두려웠던 것이지요.
로마 군병들에게 잡혀서, 납덩이가 달려있는 채찍에 맞는 것도 겁나고, 고문을 당하거나 십자가에 메달리는 것도 끔찍했을 것입니다. 일단 도망을 쳐야 했습니다. 12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도 있었고, 해야 할 일도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떠난 빈자리에 여인들 몇이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 달리신 십자가 밑에도, 그리고 뭍히신 무덤에도 여인들 몇이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무덤을 찾았던 바로 그날 지진이 일어나면서 무덤문이 열렸습니다.
그곳을 지키던 그 강하다던 병정들이 무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어제까지는 내가 제일 강한자 인것처럼 칼과 창과 방패로 무장하고 큰 소리치며 채찍을 휘둘러대었는데 지금은 아니었습니다.
삼일 전에 그렇게 혼미백산이 되어 도망하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이제는 그들이 도망을 치게 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일단 도망하고 봐야 했습니다.
여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일단 도망하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발걸음을 돌리려던 순간 음성이 들렸습니다. 들어보지 못한 천사의 음성이 분명히 그 여인들의 귓가에 울렸습니다.
“너희는 무서워 하지 말라”
강한 군사들도 무서워 도망하지만 “그러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너희들이 찾는 예수님께서 살아나셨고 그분이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좋은 사람들을 예수님 역시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보고 싶었던 여인들 이상으로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들이 보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나타나셨습니다. 무덤에 계셔야 했던 그분이 무덤 밖에, 죽은 자의 모습으로 핏기 없이 누워계셔야 하는 그분이 산 자의 밝은 미소와 함께 여인들을 맞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평안하냐”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마 28:10) 하십니다.

사람들은 무서워합니다.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약하기 때문입니다. 무지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두려운 것이고, 죽음이 두려운 것이고, 패배와 혼돈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심판대 앞에서도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죄 용서 받을 것이고, 꺼지지 않는 불이 타는 지옥이 아니라, 구더기가 죽지 않는 지옥이 아니라 밝고 따뜻한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패배가 참 패배가 아니요 심판대 앞에서의 패배가 진정한 패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이긴 자들입니다. 심판대 앞에서의 승리가 확약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무섭습니까?

군병이라도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불안과 무서움 속에 보험을 의지하고 병원을 의지하고, 돈이나 배경이나 외모를 의지하며 이 두려움을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부활에 나도 참여시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 이 땅에 살지만 천국 백성입니다. 갈 곳이 정해진 사람들입니다. 믿음만 끝까지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다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보다 먼저 천국에 가 계시고, 나를 그곳으로 오라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삶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땅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무서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을 믿기에 기뻐하며 주님을 경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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