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인들의 호칭
초대교인들의 호칭
  • 이구영
  • 승인 2013.03.15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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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고, 기독교인들이 개독교인으로 불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주 무지하고 몹쓸 사람들에 의해서 기독교는 그렇게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좋은 일은 아니지요. 그 사람들이 나쁘다고 무조건 욕할 것도 아닙니다. 빌미를 제공한 건 우리들이니까요. 칭찬은 혼자 받지만 욕은 같이 먹습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에 보면 요한 사도는 그의 교우들을 부를 때 “사랑하는 자들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 호칭은 요한이 제일 즐겨 사용한 호칭인데 사랑의 사도라고 소문이 난 요한사도가 교인들을 향한 사랑을 가득담아 늘 부르던 호칭이고 이 ‘사랑하는 자들아!’ 라는 말은 요한뿐 아니라 주의 형제 야고보나 바울 목사님 베드로 목사님 같은 분도 간혹 사용하던 호칭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별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요한일서에 나타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서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짝사랑에 지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짝 사랑 이야기는 구약성경에 너무 많이 나와 있고, 동시에 짝사랑에 지치신 하나님의 분노도 나와 있습니다.
사랑은 일방이 아니라 쌍방일 때 온전한 사랑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이 강조하는 사랑은 “서로 사랑”입니다.
- 부모가 자녀를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지요
- 목사가 교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도 목사님들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 교인들이 교회에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지요
- 나아가 하나님께서만이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서로 사랑’이 가능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자들”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과 친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랑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속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있고, 서로 사랑속에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으세요?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의 큰 증거가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났다고도 강조합니다.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이 결정적으로 나타난 바 된 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 사람을 사랑하셔서 사람이 되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결정적이라는 것이지요.
신이 사람이 되셨다! 왜요?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가게 된 우리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려 그 지옥의 문을 막으신 것이지요. 그래서 당신의 자녀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을 막으시고 건지사 천국으로 인도하시려고. 영원한 생명 주시려고 오신 이 사건이 하나님 사랑의 크라이막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사랑이 어떻게 가능하냐? 성령받아야 한데요. 내 노력으로나 내 열정으로 사랑이 되는게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충만하게 자리 잡으시고 우리를 지배하시게 되면 사랑이 쉬워진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이 왜 성령 충만하라고 하는지 아시겠어요? 성령충만해져야, 성령님의 온전한 지배를 받아야 사랑도 가능한거쟎아요.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배하셔야 내 안에 있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수그러지고 오히려 성령의 능력안에서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생기는 거쟎아요.

지치십니까? 사랑하세요!
힘드십니까? 누군가를 도와주세요! 그러면 성령께서 힘을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도 말씀하십니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성령의 능력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서로 사랑을 실천한 초대교인들을 향해서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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