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은 정거장입니다
변화산은 정거장입니다
  • 이구영
  • 승인 2013.03.0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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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백미 가운데 하나가 신앙고백입니다.
특히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유명하고 매우 감동적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이에 대하여 제자들은 예레미야라고 합니다. 엘리야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이라고도 합니다 등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에 대하여 베드로가 한 대답은 실로 높이 살만한 정답이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러나 이 고백후에 베드로는 금방 예수님께 혼이 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고난이나 십자가나 자기를 부인하는 삶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출세나 부유함이나 영달을 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의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에서도 더 큰 일을 감당해야 하는 최측근 제자들을 양육해야 하셨고 그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한 산에 올라 특별과외를 하게 되십니다. 소위 말하는 ‘변화산 성회’입니다. 이곳에서 3제자는 엘리야도 만나고 모세도 만나며 큰 감동과 은혜의 도가니에 빠졌고 변화산을 내려오고 싶지 않을 만큼 황홀경에 잠겼습니다.
그때 한 베드로의 고백은 너무 유명합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마 17장 4절)
그런데 주님은 그곳에서 더 많은 교육을 시키지 않으시고 곧 그들을 데리고 세상으로 내려오십니다.

세상에 내려와 보니 숙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리를 비운 사에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그 아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 계시자 9명의 제자들에게 아이를 괴롭히는 귀신을 몰아내 줄 것을 부탁했지만 제자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 그때 예수님께서 도착하시고 그 아이를 괴롭히던 귀신을 내 쫓아주십니다.

주님은 세상으로 향하십니다.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더 은혜를 받고 싶지만 주님은 기도하는 일과 사랑하는 일을 늘 병행하십니다. 변화산이 끝이 아니라 예수님에게는 늘 세상이 ‘삶의 현장’이셨습니다.
“밤 깊도록 동산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442장)

큰 기쁨 가운데 주님과 더 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더 큰 은혜를 받고, 더 강력한 영적 체험을 하고 싶을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래서 기도원도 찾아가고 수도원에도 가보고 금식도 하고 철야도 했겠지요. 그런데 그곳이 끝이 되면 안됩니다. 세미나가 끝이 되면 안됩니다. 독서가 끝이 도면 안됩니다. 연구가 끝이 되면 안됩니다. 설교가 끝이 되면 안됩니다. 예수님께는 세상이 끝 이었습니다. 늘 주님은 세상 가운데서 사셨습니다. 그 세상에는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늘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고쳐야할 사람들이 있었고, 쫓아내야 할 귀신들이 있었고, 가르쳐야 할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기도와 금식은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귀신을 몰아내지 못하고 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와 금식후에는 반드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삶이 이어져야 합니다. 변화산이 끝이 아니라 힘든 아픔이 있는 세상이 끝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는 세상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결코 도망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배우는게 끝이 아니고, 은혜를 받는 것이 끝이 아니고 나누는데에서 또 다른 시작이 이어집니다. 나누면 또 채우십니다. 퍼주면 또 가득고이게 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모아두면 터지고 부패합니다.
그러나 나누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것들을 또 부어주십니다. 하늘에 대한 소망이 더 커집니다. 성령의 능력을 더 크게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받은 은혜는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받은 말씀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것입니다. 물질도, 건강도, 시간도, 은혜도 나눌 때 더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고 나눌 때 더 큰 소망으로 이끌어주십니다.

변화산은 정거장입니다. 그곳에 머물면 안됩니다. 할 일 많고 괴로운 세상이 나의 일터요 나는 예수님의 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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