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07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07
  • 안양준
  • 승인 2023.09.13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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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의 「적과 흑」 속에서

「적과 흑」은 아직은 낭만주의가 편재하던 프랑스 문학에 사실주의의 신호탄을 알린 작품으로 실제 사건의 공판 기록을 토대로 나폴레옹 실각 이후 평민에게는 출세 길이 막혀버린 당시 사회상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군복을 상징하는 적(赤) 색과 사제복을 상징하는 흑(黑) 색을 제목으로 삼은 것은 당시 유행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동경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집 창살에 말을 매는 병사들의 모습을 본 후 군인에 열광했고, 사촌으로 자기 집에 거주하던 늙은 군의관을 통해 라틴어를 배우는데 그가 훈장을 바라볼 때 불타는 듯한 눈길을 눈여겨보았다.

“여러 해 전부터 무일푼의 이름 없는 중위가 칼 하나로 세계를 제패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 적은 아마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찬란한 보아르네 부인의 사랑을 받았던 가난한 시절의 나폴레옹처럼 자기라고 왜 그런 여인 중 하나의 사랑을 받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열네 살이 되었을 때 작은 도시에 장엄하게 느껴지는 교회가 건축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후 교회 대리석 기둥 문제로 치안 판사와 젊은 보좌 신부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을 때 판사가 양보하는 모습을 보에 된다.

‘요즘에는 성직자들이 장군들보다 연봉을 세 배나 더 받는다. 지금까지 머리 좋고 정직했던 치안판사가 젊은 보좌신부의 비위를 거스를까 두려워 명예롭지 못한 판결을 내리지 않는가! 그러니 사제가 되어야 한다.’

이후부터 주인공은 나폴레옹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불같은 영혼을 지닌 쥘리엥은 놀랄 만한 기억력을 가졌다. 장차 자신의 운명이 셸랑 노사제에게 달려있다고 확실히 믿은 쥘리엥은 노인의 환심을 사려고 신약성서를 라틴어로 통째로 암기해버렸다. 또한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교황론’도 암기하고 있었으나 그 어느 것도 별로 믿지는 않았다.”

당시 사회의 지배층은 부르주아, 성직자, 귀족이었다. 귀족과 부르주아는 어려워도 성직자의 길은 가능했기에 노사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신약성경을 통째로 암기했다는 것, 그럼에도 믿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주인공은 베리에르 시장인 레날 씨 집의 가정교사가 되고, 출세와 부자에 대한 혐오감으로 시장 부인을 유혹하지만 곧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후 자신에게 우정을 보이는 신학교 교장 피라르 사제에 의해 황제의 신임을 받는 라 몰 후작의 비서로 가게 되고 후작의 딸 마틸드의 오만한 성격에 자존심 상한 주인공은 그녀를 정복하고 결혼 직전에 이르는데 후작이 전한 레날 부인의 편지를 읽게 되고 그녀를 총으로 쏘고 스무세 살의 나이로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가까운 여인들로 인해 꿈을 이루기에 이르지만 결국 실패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한 젊은이의 모습에서 작가는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성격의 소심함과 부자에 대한 혐오감, 출세하고자 하는 야심 ...

책 속에서는 아직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부르주아 계급도 발견할 수 있고, 치안 판사를 이긴 젊은 보좌 신부를 수도회 첩자라고 표현하는데 이를 통해 교권주의의 비열함도 발견할 수 있다.

도대체 교회는 어떤 곳인가? 권력의 최고위층이라 할 수 있는 라 몰 후작조차 한 수 양보해야 하는 카톨릭 교권은 엄청난 힘을 지녔음에도 좋은 이미지로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사제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 주인공 쥘리엥과 같은 인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회는 사회로부터 외면 당할 수밖에 없다. 세상이 말하는 힘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성경을 모두 암송한다 해도 그에 대한 믿음은 전혀 없는 인물. 아니 그런 비상함도 없으면서 성직을 출세의 방편으로 생각하며 신앙은 전혀 없는 이들도 얼마나 많은가?

「적과 흑」을 통해 오래전 상영했던 「상류사회」라는 영화가 떠오르는 무엇일까? 물론 저속함에도 급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성경의 단 한 구절로 인간의 온갖 통념이 한 번에 정리된다. 쥘리앙은 젊은 나이에 죄값을 치르었지만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는 삶은 언젠가 그에 대한 결과로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 장례를 진행하며 맞이하는 고인과의 만남은 최대한 존엄성을 갖고 대하여야 함에도 어쩔 수 없이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분이 살아온 삶, 남은 사람들, 그가 추구해 온 인생이 무엇이었는가 등을 마치 자연스러이 다가와 말을 붙이듯 알게 되는 것이다.

신앙인이었으면서, 아니 평생 주를 위해 헌신하기로 서약한 목사였음에도 그것이 타이틀에 불과했던, 자신의 야심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해 온 자들은 되도록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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