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06
죽음, 장례와 관련해 떠오르는 단상 06
  • 안양준
  • 승인 2023.09.0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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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의 「산은 산, 물은 물」 속에서

오래 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성철 스님의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불교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면서 마치 득도나 한 것처럼 이 말을 하던 때가 있었다.

「산은 산, 물은 물」은 성철 스님이 쓴 책의 제목인데 서두인 ‘영혼의 세계 – 윤회의 실증을 위하여’에 이런 글이 있다.

“어떤 과학자나 철학자, 종교가는 영혼이 꼭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학자들은 영혼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싸움은 수 천년 동안 계속되어 내려왔습니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는가? 대승이나 소승 어느 경론을 막론하고 팔만대장경에서 부처님께서는 한결같이 생사윤회를 말씀하셨습니다. ~ 윤회는 우리 불교의 핵심적인 원리의 하나입니다. ~ 그런데 근래 과학이 물질만이 아니라 정신과학도 자꾸 발달함에 따라 영혼이 있다는 것이, 윤회가 있다는 것이, 또한 인과가 분명하다는 것이 점차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례로 터키 남부의 아나다 마을에 사는 이스마일이라는 어린이와 스리랑카의 37개월 된 쌍둥이를 소개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전생기억의 증거가 될 만한 사람을 전문으로 조사하는 이안 스티븐슨이라는 인물이 수년가 600여 명의 자료를 수집하여 대표적인 20여 명을 뽑아 「윤회를 암시하는 20가지 사례」라는 책을 출판하였다고 한다. 

사무엘상 28장에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투에 앞서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얼마 전 죽은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이에 대해 신접한 여인이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것이 사실일까? 그 여인이 불러낸 자가 정말 사무엘 선지자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성경을 읽다보면 우리는 사울이 정말 사무엘의 영을 만났는가? 그렇다면 신접한 여인을 통해 사울 앞에 나타난 것은 정말 사무엘의 혼령인가? 아니면 사단인가? 등의 의문을 갖게 된다. 신접한 여인의 히브리어 원어는 ‘신의 여주인’이라는 의미로 신접한 여인 중 우두머리 즉 가장 영험한 영매를 가리킨다.

사울이 그 여인을 찾아간 동기가 무엇 때문인가?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두려운 까닭이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대답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찾게 된 것이다.

성경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레 19:31), “용납하지 말라”(신 18:11)고 명령하고 있다. 또한 삼상 28:3에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는 말씀이 있다. 자신이 내린 명령을 자신이 어기는 것이다.

신접한 여인를 ‘초혼자’라 할 때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성경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유는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이 땅을 떠나 낙원이나 음부에 들기 때문에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초혼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인데 그러면 신접한 여인이 불러낸 존재의 정체는 무엇인가?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삼상 28:13),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삼상 28:14)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울이 그를 사무엘인 줄 알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한 것이다.

그리고 불려 올라온 영이 사무엘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사울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기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의 손에 넘기신다고 한다. 

하나님의 영이 아닌 모든 영은 결국 악령에 속한 것으로 악령도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능력은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악령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들에게 지배력을 갖는 것이다.

성철 스님이 말한 전생기억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윤회의 증거가 아니라 악령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전생기억을 하는 것이나 윤회가 아니라 이를 믿으려고 하는 자들의 마음에 악령이 그렇게 역사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발락의 유혹에 흔들리는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처럼 신접한 여인을 통해 올라온 악령을 통해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능화가 쓴 「조선무속고」에 세 부류의 무당에 대해 설명하는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세습무, 학습을 통한 학습무, 실제로 신이 내린 강신무, 그래서 세습무와 학습무는 선무당이라 부르며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시퍼런 작두 위에서 춤추는 것은 피나는 연습으로 불가능하며 숨겨진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기가 막히게 맞추는 까닭에 무당을 지배하는 악령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영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성경은 인간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지식이 담겨있지만 나머지 잡다한 것들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영적 존재의 기원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경은 사탄을 ‘이 세상 임금’(요 12:31), ‘이 세상 신’(고후 4:4),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엡 6:12)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경이 제시하는 유일한 구원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자들은 종교, 정치, 경제, 군사, 학문, 예술 모든 분야에서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능한 존재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단 하나님의 관심은 구원 얻는 자에게 있을 뿐이다.

성철 스님이 죽기 전 따님에게 남긴 유언은 자신이 지옥에 간다는 것이었다. 1987년 4월 23일자 조선일보에 쓴 글에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 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물론 불교와 논쟁을 벌일 의도는 없다. 다만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즉 성경대로 해석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실제로 불교 성전에 기록된 석가의 일대기와 교리적으로는 무신론이라 가르치지만 누구보다 석가를 신격화한 현대 불교는 너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장례식장은 그 어느 곳보다 영적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장소이다. 무엇보다 장례지도사가 하는 입관 멘트는 유·불교가 혼합된 것으로 기독교 멘트는 없는 형편이다. 기독교식 멘트는 목회자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입관과 입관 예배가 이분화하는 현실에서 온전한 기독교 장례는 상실되어가는 형편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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