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를 위해, 성도를 위해
목사를 위해, 성도를 위해
  • 신상균
  • 승인 2023.01.11 20: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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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7일 토요일 온 세상이 하얀 눈에 잠겨 버렸습니다.

그날, 지방 신년 모임이 있어 시내까지 나가야 하는데 걱정이었습니다.

가야되나 가지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하얀 눈길 위로 길이 하나 나 있었습니다.

누가 쓸었는지는 모르지만 교회에서 사택까지 난 길이었습니다.

참 고마운 성도님!

 

잠시 후 주차장 앞에서 고민합니다.

시내로 나가려면 차를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차가 눈 위로 지나가면 얼어 붙어 사람들이 다니기 힘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 차가 나갈 수 있도록 눈을 좀 쓸자’

교회 창고에서 제설 넉가래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차가 나오는데 지장이 없도록 주차장 앞의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슥, 슥’, 눈 치우는 소리와 함께 주차장 앞에 쌓여 있는 눈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래. 이제 이만하면 됐어’

그리고 차를 가지고 시내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모양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눈을 치운 곳과 치우지 않은 곳이 바다와 해변처럼 나누어졌습니다.

‘그래, 이왕 치우는 김에 조금 더 치우자’

그렇게 치우고 있는데 아내가 나왔습니다.

아내도 제설 넉가래를 가지고 와서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차장에서 사택 앞까지 치우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치우고 가야지’

그런데 사택 앞까지만 치우고 교회 앞은 하나도 치우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 조금만 더 치우고 가자’ 하고 교회 앞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30분이 다 되었습니다.

11시까지 가려면 눈을 치우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래, 교회 성도님들이 와서 눈 치겠지’

그런데 갑자기 저의 눈 앞에 사택앞에 난 길이 생각났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목사님 다니라고 눈을 쓸어 놓은 길

그런데 나는 바쁘다고 그냥 가려는 것이었습니다.

갈등이 생겼습니다.

‘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 시작했으니 끝을 내야겠다.’

마음을 가다듬고 교회 앞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눈은 굉장히 습기가 많았습니다.

눈이 얼마나 무거운지 눈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들은 목사님을 위해 눈길을 치우는데 목사는 성도들을 위해 눈길을 치우는구나’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들은 여럿이서 치우는데 나는 혼자서 치우네’

괜히 억울한 것 같았습니다.

그때 내 마음속에 울림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니까 니가 담임목사쟎아’

그렇게 눈을 치웠습니다.

머리카락은 온통 땀으로 젖었습니다.

집에 들어와 머리를 감고 점심을 먹는데 꿀맛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집 앞에 수제 쌍화탕 한 박스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성도는 목사를 위해, 목사는 성도를 위해 그렇게 한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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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균 2023-01-12 16:46:22
2023년 1월 7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