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 거실이 좁게 보입니다.
장로님, 거실이 좁게 보입니다.
  • 남광현
  • 승인 2023.01.0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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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내일 모레 장로님 가정 예배를 드리고 싶다 하시네요.”
“예?, 31일 인데요, 신년 가정예배가 아니고요? 내일 모레가 맞아요?”
“예, 그날이 장로님 생신날이라서 자녀들이 다 모인데요 그리고 송구영신예배를 우리교회에서 함께 드리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아, 잊고 있었네요, 그래요 내려간다고 하세요.”

필자의 처와 주고받은 대화이다. 어촌 교회로 부임하여 목회 현장을 경험하면서 도시에 있는 교회와 다른 풍경이라고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생일에 관련된 것이다. 당일 아침에 부인 권사님께서 필자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목사님, 저 0권사에요, 식사 하셨어요?”
“예, 권사님 그럼요, 요즘은 식사량을 조금씩 늘려가느라 거르지 않아요. 참, 장로님 생신이라 가족 분들이 다 모이신다고요?”
“예, 저희 장로님이 목사님 힘들다고 사모님께 전화 드렸다고 해서요”
“예, 처에게 말씀 전해 들었어요, 12시쯤 내려오면 된다고 하셨다는데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다시 전화 드렸어요. 목사님, 10시 반까지 내려오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럼요, 예, 시간에 맞춰 내려가겠습니다.”
“목사님, 식사시간 맞춰 드셔야 하는데……. 우리 장로님은 목사님 힘드신 것만 생각하신 것 같아요”
“감사하지요”
“애들도 모두 일찍 내려 온데요”
“예, 잘 되었네요, 권사님 감사해요, 준비하고 내려갈게요.”

교우들의 생일에 관해 매년 경험하는 일인지라 놀라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나름 그 이유를 어촌의 특성에서 찾고 목회에 적용하게 되었고 감사하게 된다. 생일에 예배를 드리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면서도 요청하는 이유는 다음 해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음이 우선이며, 자랑거리 삼을 만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는 전적으로 필자가 경험한 어촌의 삶에 대한 개인적 견해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서로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우선되는 모습이라고 인정하기에 더 감사하게 된다. 처음부터 이런 일이 이해되었던 것은 아니다. 가정마다 스스로 예배시간을 정해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을 옮기는 모습에 적잖게 당황하기도 했었다. 때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있기도 했고, 자녀들이 믿지 않는 경우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방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상황도 있었다. 그럼에도 목사를 부르고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한다. 목사에게 좋은 밥상을 차려주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다. 그리고 아무리 믿음 없어 보이더라도 당신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무언의 요청이기도 하다. 이런 모습은 이웃을 초청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식사를 마칠 때쯤 기다렸다는 듯이 기막히게 마을 분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들어오며 건네는 인사가 낯설지 않다.

“목사님 오셨네, 예배는 봤구먼”
“어르신들 오셨어요, 저희 먼저 식사를 하고 있네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00이 어메가 몇 시쯤 오라고 해서 와 봤어요.”
“이리와 않어유, 애들이 보내준 것들 가지고 한 끼 준비한겨, 우리 목사님은 시장하실까봐 먼저 드시라고 했어.”
“아유, 그래야지 우리야 뭐 오라고 해서 왔지”

시간차를 두고 이웃들을 나누어 부르는 것이 배려이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차린 생일상이지만 그 공을 자녀들에게 돌리며 자랑삼는 여유와 목사내외를 통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임을 은근히 자랑하려는 의도도 지혜로움이다. 자신의 믿음을 목사 앞에서 증명해 내려는 준비된 열심이 참 좋다. 이보다 더 복된 인생이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배를 드리고 장로 내외분께 건넨 말이다.

“장로님, 칠순 때는 거실이 넓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손자, 손녀들이 장성해서 그런지 이 넓은 거실이 좁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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