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3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3
  • 안양준
  • 승인 2022.12.2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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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승천

죽음은 원죄 이후 모든 생명체가 경험하는 공통분모라 할 수 있다. 유독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조차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공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죽음의 방식을 달리한 경우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경우의 수에 대해 확률을 적용시킨다고 한다면 지구상에 살다간 모든 사람들 중에 지극히 적은 – 아마 몇천억 분의 일이라 할 수 있는- 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성경은 분명히 그런 자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정말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대서특필을 해도 부족할 판에 성경은 매우 간략하게 기록할 뿐이다. 마치 믿지 못하면 말고 하는 방식으로 바로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

분명 일반인들의 죽음과는 다른 방식이 취해졌음에도 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기에 이를 증명해낼 방법이 없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행 1:9)

도대체 이 사실을 어떻게 믿으라는 것인가?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 간단한 부연설명이 붙어 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0-11)

여기에서는 죽음이 아닌 다른 방식만큼이나 믿지 못할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흰 옷 입은 두 사람’의 정체에 관한 것이다. 성경에 대해 아는 자들은 이들에 대해 ‘천사’라고 믿고 있지만 누가 ‘천사’의 존재에 대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성경은 그저 기록할 뿐이다. 위경이나 외경도 아닌 성경에, 믿든지 말든지….

이 시간 관심의 대상은 죽음의 방식을 달리한 또다른 한 사람에 대한 것이다. 짧게 제목을 붙인다면 ‘엘리야의 승천’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왕하 2:11)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서술할 뿐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승천이 주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인류 역사상 단 세 사람에 불과한 이들에 대한 기록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피하는 다른 방식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 주제는 무엇인가? 죽음을 달리한 방식이 우리에게는 엄청난 사건임에도 엘리야의 승천의 경우 그것이 주제가 아니라 오히려 엘리사에게 주어진 사명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잠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인물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바로 모세의 죽음이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신 34:5-6)

성경은 분명히 모세의 죽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 1:9)

모세의 죽음에 어떤 비밀이 있기에 천사장이 마귀와 다투어 변론을 벌인다는 말인가? 모세의 죽음도 분명 일반인들의 죽음과는 다른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쨌든 성경이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방식을 달리한 인물들은 비범한 인물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산상의 사건에 두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마 17:3)

모세와 엘리야는 각각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잘 감당하였기에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른 차원으로 승격한 모습으로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하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의 공통점을 든다면 여호와의 산 호렙에서 계시를 받았다는 점, 마지막 지점이 요단이었다는 점 외에도 승계(承繼)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모세를 이어 여호수아가 배턴(baton)을 이어받은 것처럼 엘리야를 이어 엘리사가 배턴을 이어받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에서 엘리야의 승천보다 엘리사에게 이어진 사명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위대한 인물의 뒤를 따라 자신도 그 길을 걷기를 원하는 인물에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왕하 2:1에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라는 말씀이 있다. 엘리야의 승천의 주역은 하나님이시다.

이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한 말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는 표현이 세 번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이런 지시를 내리신 것은 엘리사의 충성을 테스트하기 위함이다. 엘리사 역시 세 번 동일하게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한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맹세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이다. 그때 엘리야가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고 하자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지금 당장 엘리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엘리사가 요구하는 것은 엘리야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왕하 2:10)

결국 엘리야의 승천의 자리까지 따라갔고 목격했음으로 자신이 요구한 것을 얻게 되었다. 이를 통해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 엘리야의 뒤를 이은 엘리사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이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끝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것,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에녹과 모세와 엘리야에게 주신 것처럼 마지막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실 것이다. 부활과 영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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