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5
성경에 나타난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 25
  • 안양준
  • 승인 2023.01.04 20: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아먹은 아이의 죽음

얼마 전 북한의 무인기가 우리 영공에 들어온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리 군 당국은 5대라고 하고 북한 총참모국 작전국의 자료에 의하면 12대라고 하는데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북한의 무인기가 대한민국 영공을 침략한 것은 사실이며 이에 대해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전쟁 준비를 이야기하였다.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아람의 벤하닷이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성을 포위한 내용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성을 공격했다는 내용은 없고 다만 사마리아 성을 포위만 했을 뿐임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엄청난 고난을 잘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식량난이었다.

적이 포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 밖에 있는 이들과의 교류가 단절되는 까닭에 물자가 반입되지 않고 사마리아에 닥친 기근이 이에 더하여 성 안의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극히 부족하게 된 것이다.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왕하 6:25)

레위기에 의하면 나귀는 부정한 동물에 속하기에 일반적일 경우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더구나 머리 부위는 가장 값싼 부분이라 할 수 있음에도 은 팔십 세겔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은 1세겔의 경우 일반 노동자의 경우 4일간 노동한 품삯 그러니 80세겔의 경우 320일. 거의 1년치의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다.

합분태는 대부분 영역본에서 ‘비둘기 똥’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긴박할 경우 소금 대신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은 다섯 세겔에 팔렸다고 한다.

먹을 식량이 없을 경우 아무리 많은 돈이 있으면 무엇하랴, 당연히 모든 돈을 허비하더라도 먹을 것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돈이 없는 이들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 왕이 성위로 지나갈 때 한 여인이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라고 소리친다. 그때 왕의 대답이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라는 것이었다.

이 땅의 절대권력으로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전쟁시 겪는 고난 앞에서는 왕권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왕이 한 대답은 자신의 무력함을 잘 드러내주는 대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왕이 여호와의 성호를 들먹인다고 해서 그가 대단한 신앙심을 가진 자라고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말한 여호와라는 말은 단지 자신의 무력함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일 뿐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상황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왕하 6:28-29)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는 간혹 죽음의 순간에도 자식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성애에 관한 기사들을 접할 때가 있다. 인간 뿐 아니라 동물의 경우 어미는 비록 죽은 한이 있더라도 자식을 돌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여기서는 자기가 낳은 자식을 삶아 먹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여인이 자기 자식들을 삶아 먹는데 동의를 하고 먼저 자기 자식을 삶아 먹었는데 다음날 다른 여인이 약속을 어기고 자기 자식을 숨겼다고 하는 말을 왕 앞에서 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고 하였는데 이스라엘의 경우 비통함을 느낄 때 자기의 옷을 찢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는 회개와 연관하여 일어나는 행동이지만 본문에는 왕이 회개했다는 어떤 징후도 찾아볼 수 없다.

구약성경의 경우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하 17:47)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와 승리케 하시는 즉 여호와께서 이끄시는 성전(聖戰)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기 위해 개입하시는 전쟁도 있다.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고 자기 자식을 삶아먹는 사회, 그런 말을 듣고도 비록 행동은 비통함을 드러내는 것처럼 시늉을 하지만 전혀 회개치 않는 왕의 태도.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책망케 하시기 위해 아람 왕을 통해 개입하신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먹을 것이 없던 우리 백성들이 왜군들이 토해낸 것을 서로 먹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는 기록도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다.

결코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가장 큰 고난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라고 허세를 부리지 않았는가? 자신은 이미 대전으로 내려가고도 서울에 있는 것처럼 국민을 속이지 않았는가? 결국 고통을 겪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몫일 뿐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무엇보다 식량난이 문제라고 하였는데, 전쟁의 조짐만 보이더라도 외국의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예치하거나 투자한 돈을 빼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계속 전쟁을 부추기는 발언을 해대는 것은 누구를 위한 허세인가?

결국 아람과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환청을 듣게 함으로 스스로 물러가게 함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도대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의해 삶아 먹혀지는 아이는, 그런 죽음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전쟁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길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