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사람, 온유하지 못한 사람
온유한 사람, 온유하지 못한 사람
  • 이구영
  • 승인 2022.11.04 0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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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말씀합니다. [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신앙생활은 예수님께 영향을 받아 내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정하여 전진하는 것이고 동시에, 나를 본받은 누군가가 하나님을 향하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온유함의 과정입니다. 온유함은 희랍어로 ‘프라오테스’ 라고 합니다.
- 열이 올라서 얼굴이 뻘겋게 되었다가 그것이 진정되면 이것을 프라오테스라 합니다
- 흥분해서 땀을 뻘뻘 흘리다가 그것이 식어지면 프라오테스라 합니다.
- 사나운 짐승이 길들여지면 그것도 프라오테스라고 합니다.
-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길들여져서 그분께만 순종하는 자를 온유한 자라 합니다.

이처럼 온유한 사람은 변화를 경험하고, 온유해지지 않으면 변질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온유해지는 과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한번은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 산에 올라 40일을 금식기도 하며 십계명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길고 힘들었을까요? 기운이 하나도 없고 눈도 침침하며 귀도 들리지 않고 한없이 졸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모세는 십계명을 받아 오는데, 그동안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스스로 생각해도, 그동안 많이 길들여 진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우상 숭배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 혈기를 참지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직접 받은 십계명 돌판 두 짝을 집어던져 깨버리고 맙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던 모세는 금으로 만든 송아지 우상을 불에 넣고 녹여서 우상숭배 축제에 참여했던 이들에게 먹여버립니다. 그게 모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세가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유함의 대명사가 됩니다. 이 과정을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완전’이라고 표현합니다. 완전을 향한 발걸음! 성령께서 함께하시며 도와주시는 완전으로의 순례길! 예수를 믿으면서 변화가 없다면 그는 가짜입니다.

요즘 자꾸만 세상을 닮아가고 세상의 흐름, 세상의 문화에 빠져 가는 나를 봅니다. 문화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길들여지는 나를 봅니다. 원망 문화, 보복 문화, 외형 문화, 보여주는 문화에 길들여져 가는 우리를 봅니다. 예수를 믿은 지 한 참 되는데도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아직도 길들여져 가는 나를 더러 보게 될 때 참 많이 놀라곤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성경은 온유해지지 않아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여지지 않아서 패망한 사람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요,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야곱의 아들 12명은 각자 번성하여 부족을 이뤄 부족장이 되었고 그 부족들마다 수가 불어났습니다. 애굽에서 400여 년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원했던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200만 명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200만 명! 하나님께서는 이 2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가지 약속을 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일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 홍해를 가르셔서 아말렉을 이기게 하시고,
. 마라의 쓴 물도 달게 만들어 놓으시고,
.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시고
. 때로는 메추라기를,
. 때로는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200만 명을 먹이고 마시게 해주셨습니다.
. 또 낮의 더위가 그들을 삼키지 못하도록 구름을 띄우셨고, 밤의 습기와 추위가 그들을 해하지 못하도록 불기둥을 세우셔서 온기를 유지해주셨습니다.

전능하심을 보여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살면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으로 마음과 행동이 길들여지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못 간다고... 모세의 전달을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큰 소리로 환호하며 환영했습니다. 우리가 다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가나안에 들어가겠다고 약속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말씀대로 순종하겠다, 헌신하겠다, 봉사하겠다, 사랑하겠다. 거룩해지겠다, 희생하겠다 하면서도 늘 내 잇속 챙기기에만 바쁘고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에 하나님을 철저하게 무시하듯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앞에서는 약속을 지킨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전혀 다른 행동을 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우상 숭배를 하고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시기, 질투가 많아서 남이 잘 되는 것에 대해 박수를 쳐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더니 결국 200만 명 중에 어린아이들과 단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왜요? 온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내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는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오랜 세월 그 성질을 죽이고 그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질 때, 천국 백성이 되고 이 땅에서도 약속의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 나를 세워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져 가고 있나?’
‘지옥 체질을 천국 체질로 개선하고 있나?’
‘난 오늘 무엇에 길들여져 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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