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는 사랑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
  • 이구영
  • 승인 2021.11.04 2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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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법궤를 찾았습니다. 알아보니 기럇여야림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13km지점에 있는 산속 도시입니다. 다윗은 3만 명의 사람들을 대동하고 법궤를 운송하기 위해서 함께 떠났습니다. 법궤를 보관하고 있던 아비나답 제사장의 집으로 갔습니다.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가 법궤를 수레에 싣고 그 수레를 몰았습니다. 법궤를 실은 수레가 나곤이라는 사람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갑자기 뛰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수레에서 떨어지려 했습니다.

그때 웃사라는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 무거운 궤를 붙잡았습니다. 그 궤는 아무나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수레에 실어서 나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전염병도 일어났고, 사람도 많이 죽었는데 또 웃사가 경거망동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웃사는 죽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웃사를 죽이시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언약궤 이동을 중지시켰습니다. 그 후에 그 궤를 그 옆에 살고 있는 오벧에돔의 집에 임시로 옮겨 놓았습니다.

자, 여러분이 만약 오벧에돔이라면 이 궤를 맡으시겠습니까?
전염병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수 만 명이 죽기도 했습니다. 바로 눈 앞에서 웃사가 죽었습니다. 애물단지가 아니라 오히려 저주덩어리일수도 있습니다. 오벧에돔은 가드 사람입니다. 가드는 언약궤로 인한 전염병이 돌았던 도시입니다. 가드 사람 누구도 언약궤를 집으로 모시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오벧에돔은 그 궤를 환영하며 자기 집에 모셔 들였을까요?

어쨌거나 그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법궤를 집으로 모셔온 뒤로 대박이 난 사람입니다. 아비나답의 집에 20년 동안 법궤가 있을 때 그의 집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벧에돔의 집에는 단 3개월 동안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정도로 오벳에돔의 가정이 복을 받았느냐? 하면 이스라엘의 사학자 요세프스는 법궤가 오벳에돔의 집에 들어 갈 때에는 그가 제일 가난한 집이 었는데, 법궤가 3개월 후 그 집에서 나올 때는 가장 부잣집이었다. 고 그랬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산 사람들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이어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던 사람들!
그래서 그 계명을 지키기를 즐거워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그분이 모욕을 당하거나 여호와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던 사람들!!

아비나답과 그의 아들 웃사와 아효는 하나님을 사랑한 흔적이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20년 혹은 70년을 믿어야 아무런 효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하고 싶었고, 그분을 이용해서 내가 잘 되고 싶었고, 그분이 내 편이심을 자랑하고는 싶었지만 그분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부족했습니다. 영적인 지식도 없었고,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랑하면 더 알고 싶어서 언약궤에 대하여 더 공부도 하고 영적인 지식도 배워야 했을 텐데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법궤가 이동할 때 메고 사는 것임도 몰랐습니다.

[삼하 6: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기에서 ‘붙잡다’ 란 의미로 사용된 히브리어 ‘아하츠’는 소유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웃사의 생각에 이것은 우리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금으로 둘러싸여진 이 상자는 내 것인데 왜 다윗이 군사력을 앞세워서 빼앗아 가느냐는 의미이고, 내가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삼하 6: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여기서 ‘치셨다’ 는 말은 히브리어로 페레츠 인데 이 말은 충돌이 일어났다. 마찰이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웃사 사이에 마찰이 일어났고 웃사가 죽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니 소유하려고 하고, 충돌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반면 오벧에돔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이 담겨있는 저 언약궤가 비와 바람과 햇빛과 이슬에 노출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재앙덩어리일 수도 있는 그 언약궤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 들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길이 있습니다.
힘들지만, 손해가 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자원하여 선을 이루어내는 것!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일 4:18-19]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아비나답과 웃사와 아효는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가 잘 살고 자기를 내 세우려고 했습니다. 많은 백성들은 웃사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궤가 모욕을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그 재앙덩어리를 자기의 집으로 모셔 들입니다. 두려웠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두려움을 극복해냅니다. 오벧에돔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감동하셨는지 아비나답 집에 수 십년 있는 동안 부어주지 않으셨던 그 복을 3개월 동안 다 쏟아주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이겨내면서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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