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가 싫다
사라가 싫다
  • 이구영
  • 승인 2021.11.19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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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장점 중에 하나는 관점을 바꾸어 준다는데 있습니다.
사람중심주의가 하나님중심주의가 되고, 부정적인 사고가 긍정적이 사고로 되고 인간적인 계산이나 과학적, 혹은 이성중심주의적 생각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관점, 성경적 관점, 천국백성의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관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라라는 할머니는 그릇된 세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며 삽니다.

사라의 삶은 애굽에서부터 그릇되어지기 시작합니다. 애굽 왕에게 팔려갔다고 다시 돌아온 후로 일단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남편에 대한 믿음! 남편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물론,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사라의 노예살이를 막아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감사의 타이밍을 놓쳐버립니다. 은혜를 안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계심도 알고, 하나님께서 도우셨음도 압니다.
그런데 감사가 없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영적인 눈으로 환경과 상황을 본 것이 아니라, 육적인 눈으로 모든 상황을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잊고, 사람의 시각으로만 상황을 봅니다. 이게 마귀가 나를 점령한 증거입니다. 성경을 보면 감사와 은혜를 잊은 사라에게 더 큰 죄가 찾아오게 됩니다.

하갈 사건입니다.
죄에 죄를 더하는 사람 사래가 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는 대리모에 대한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만해지면서 자꾸 자식에 대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돈이 없을 때는 죄가 적었는데 돈이 많아지면서 죄도 다양해짐을 알아야 합니다. 사라는 풍족함 속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혹은 주시는 사명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이 하는 것을 흉내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사래가 주인님이었고 하갈은 참 순진하고 말 잘 듣는 몸종이었습니다. 애굽 에서 따라온 한 식구이었습니다. 10여년을 아무 문제없이 함께 살았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갈이 교만해졌습니다. 자기의 신분이나 위치, 자기의 역할에 혼란이 왔습니다. 무책임한 사래는 몸 종 하갈을 쫓아버렸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래를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갈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는 하갈을 달래셔서 다시 아브라함의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사래의 무지와 고집, 자존심과 무책임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장면입니다.

그 불신앙의 절정이 수태고지 사건입니다.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사라가 어떻게 합니까? 성경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상황을 다시 설명하며 사라의 불신앙을 기록합니다.
[창 18:11-12] 새번역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고, 사라는 월경마저 그쳐서,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난 사람이다.
12 그러므로 사라는 "나는 기력이 다 쇠진하였고, 나의 남편도 늙었는데, 어찌 나에게 그런 즐거운 일이 있으랴!" 하고, 속으로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아무리 생각을 해도 불가능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사라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89세의 할머니가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번쯤 이런 질문은 해 보아야 합니다. 처녀도 아이를 낳을 수 없고, 89세 된 할머니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데 왜 그 상황에서 마리아는 아멘하며 순종하는데 사라는 비웃었을까요?

마리아는, “나는 섬길 준비가 된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기를 원합니다”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왜 이 고백이 사라에게서는 안 나왔을까요? 육적인 관점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은 아닙니다. 더욱이 꾸짖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창 18:15] 새번역 사라는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였다.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
감히 하나님을 속이려고 듭니다. 참 한심스럽고 정말 닮고 싶지 않은 모습입니다. 마치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꾸지람 앞에서 핑계를 대고 자존심을 내세우며 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는 거짓말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 합니다. 참 멍청하고 못난 사람 사라입니다.

감사의 타이밍도 놓치고, 책임져야 될 타이밍도 놓치고, 회개의 타이밍도 놓치고... 사라는 좋은 사람인줄 알지만, 또 믿음의 어머니인줄 알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닮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늘 내게 있는 사라의 모습들을 찾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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