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서른 일곱 번째 이야기
큰나무 서른 일곱 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1.10.20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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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 졌다.

아내와 아들 셋이 가까운 도시로 겨울옷을 사러 외출을 했다. 안경점에 들러 아들이 불편한 안경다리를 교정하는 사이 점포이전을 앞세워 대폭 할인 행사를 하는 썬 그라스를 구경하느라 이모양 저모양의 썬 그라스를 얼굴로 가져가는데 판매원이 자꾸 ‘그쪽은 비싸요‘라고 말을 건넨다. 눈치 없는 시골 목사는 판매원의 말을 이해 못하고 썬 그라스를 만지작거리는데 아내가 안경수리가 다대면서 소매를 잡고 매장 밖으로 나를 이끌어낸다. ’당신 복장 좀 봐요‘ 내 복장이 엇대서 복장을 살핀 나는 판매원의 소리를 그 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마당을 정리하다 일하는 복장 그대로 차에 올라 도시로 나온 터라 시골의 가난한 촌부 모습 그대로였다. 가난이 베여있는 검은 얼굴에 복장마저 초라한 사람이 비싼 안경을 만지작거리니 당신이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충고였던 것이다. 아들 겨울 자켓을 사는 가게에서도 주인의 시선은 달가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너무 비싸다‘라는 말을 여러 번 흘려 주인의 판단에 동의를 보냈다. 나는 그들에게 시골 가난한 농군이길 원했다. 아내는 돌아오는 내내 나의 복장을 타박했지만 개의치 않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계절의 소리를 듣느라 눈과 귀가 바빠 있었다.

겨울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낼 시간임에도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더웠던 시간이 순간에 영하의 기온으로 곤두박질하고 푸르던 세상에 동상을 입히며 초라한 퇴색을 맞이하였다. 언제고 다가올 시간이었지만 마치 예상 못한 일을 당한 것처럼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는 모습이 서글프고 쓸쓸하다.

인생의 계절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육신을 입고 사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원을 살 것처럼 욕심을 내지만 생의 끝은 준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다가선다. 생의 끝을 피하려는 시도는 인생들이 범하는 마지막 어리석음이다.

천수를 누리는 복을 받고도 생에 집착을 죽음의 순간까지 놓지 못하는 인생은 서리 맞은 풀잎처럼 초라하다. 천하를 호령하던 군왕이라도 인생의 끝은 가난한 걸인의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예루살램 지역을 점령하고 명실상부 이스라엘 최고의 임금으로 등극한 다윗의 죽음도 호화롭기 그지없던 솔로몬의 죽음도 허망하긴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장례행렬이 인생의 상황을 호전시킬 수 없다.

우리에게 유일한 기회이며 준비의 시간은 살아 있는 시간이다. 삶의 시간을 함부로 하고 영원을 준비하지 못한 인생은 오늘을 탐하며 영원히 살 것처럼 호기를 부린다. 추수를 끝내고 자신의 영혼을 마취시킨 부자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상상으로 밤을 맞이하지만 그의 꿈 속 상황은 영혼을 취하시는 하나님의 준엄한 음성을 듣는다.

풍요가 넘실대고 고운 단풍으로 치장하는 가을은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알곡이 가득했던 들판은 금 새 비어지고 고운 단풍은 퇴색 되어 낙엽으로 사라진다. 다가오는 시린 계절을 막아설 장사를 인생들은 알지 못한다.

인생은 풍요의 계절을 거치면 누구나 헐벗은 모습으로 그분 앞에 서야한다. 다행인 것은 점포 주인처럼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심판자라는 사실이다. 도리어 그분이 받으시는 사람은 상한 심령의 사람이다.

늦봄에 심은 서리태가 콩꼬투리만 남고 잎이 다 떨어져 추수가 다가 왔음을 알려준다. 콩을 꺽으면서 연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티끌보다 작은 자를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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