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서른 여덟 번째 이야기
큰나무 서른 여덟 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1.11.18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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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캐고 난 자리에 유기질 비료 몇 포대와 쓰다 남은 복합비료를 뿌리고 작은 관리기를 이용하여 골을 타고 배추모종을 심은 때가 구월 초순경이다. 남들보다 두 주간쯤 늦은 김장배추는 잦은 비로 인하여 생각보다 초기성장이 빨랐다. 실패를 피하기 위하여 예년보다 백여 포기를 더 심은 터라 넉넉하게 김장을 하고 서울서 이사 오신 권사님과도 나눌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아이들과 함께 키우고 있는 토끼 세 마리가 견고한 울타리 밑을 파고 탈출을 했다. 낮에는 어딘가에서 숨어 있다가 밤이며 나타나 비닐하우스에 심은 고추와 여린 배추를 먹어대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눈에 띠게 배추가 사라져가고 고추는 끝부분만 갈아먹어 애써지은 농사를 망쳐 놓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웃의 밭까지 진출하여 피해의 원성이 들려오는 통에 이웃 분들의 볼 낯이 없어졌다.

토끼 포획 대작전은 멧돼지 구제에 쓰는 발목 포획 장치까지 동원한 치밀한 계획이 세워지고 길목마다 철사로 만든 올가미가 놓여졌다. 작전 삼일 째 드디어 한 마리의 토끼가 하우스 입구에 놓인 멧돼지 포획장치에 발목이 걸려다. 벗어나려고 애쓴 흔적이 생각보다 크게 남기고 탈진 직전의 토기를 포획 틀을 설치해주신 선생님 집으로 입양 보내는 것으로 일 달락 되었다. 남은 두 마리는 덧들을 피해 용케 빼져나가는 통에 작전은 장기전에 접어들었다. 토끼는 자주 다니던 길들을 포기하고 자주 이동경로를 바꾸면서 포획 작전에 혼선을 일으켰다. 작전 한 달 째을 넘긴 어느 날 방심한 토끼는 눈에 잘 보이는 통로에 놓인 철사 올무에 머리를 넣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센터의 개구쟁이들이 토끼가 걸렸다고 알려왔고 다행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어 이도 입양 보냈다. 남은 한 마리는 어찌 된 영문인지 어디론가 사라져 나타나질 않고 있다. 고양이나 날짐승에게 해를 당한 것은 아닌지, 하여간 토끼의 공격에 대부분이 순이 잘린 배추는 다시 잎이 났지만 성장은 영 마음을 채워 주지 못했다. 크기도 제각기인 배추를 함지 넣고 김장하면서 배추상태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노랗게 속이 찬 배추 몇을 제하면 겉절이 배추 수준을 겨우 넘긴 상태지만 고소한고 단 맛이 나는 것이 먹을 만하다는 평이 간간나간이 새어 나올 뿐이다.

삶은 기대를 만족시킬 만큼 후한 경우는 많지 않다. 늘 부족하고 어려움을 동반한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불평하지만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돌발상황이 발생하는가 하면 뜻하지 않는 행운이 찾아든다. 질고가 바쁜 걸움을 더디게 만들고 낯선 곳에서 낭패를 당하면서 도움을 얻지 못하는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인생은 절망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무형의 희망을 상상 속에 만들고 어두운 터널을 용케도 벗어나는 기예를 보인다는 것이다. 어디서 그런 용기와 지혜가 생긴 것이지 알 수가 없지만 희망은 밤길의 등불처럼 인생의 앞길을 비추고 있다. 극심한 가뭄이 찾아들어 한 해의 농사를 망치 농부는 너무도 태연하게 내년에 잘 지으면 되지 하고 별스럽지 않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위대한 종교인도 지니기 쉽지 않는 의연함을 보인다.

희망은 풍요의 결과로 얻어지는 소산이 아니라 도리어 조금 불편하고 부족한 삶이 만들어 내는 행복한 미래의 기대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이 땅에 모든 것이 풍요로운데 한지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희망 이란다. 서글픈 이야기지만 소박한 희망을 갖기조차 버거운 현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이 결핍 된 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하여 교회는 세상의 등불이어야 한다.

겨울이 찾아드는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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