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서른 다섯 번째 이야기
큰나무 서른 다섯 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1.08.19 0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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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와 말복을 지난 산골은 며칠 전만해도 살인적인 더위를 잊기에 충분할 만큼 시원해 졌다. 간사한 입술은 더워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던 모습은 어디가고 선선하여 긴팔을 입을지를 걱정한다. 푸석한 여름 가뭄에 꽃가루를 날리던 식물들은 다투어 작은 열매를 키워간다. 가을을 향한 잰 걸움을 옮기고 있는 계절은 따라오지 못하는 인간들의 일상을 기다려주는지 한낮은 여전히 뜨거운 태양이 재촉의 눈빛을 보내오고 있다. 수확기를 맞은 고추는 농촌 마당을 붉게 물들이고 여명부터 울어대는 참매미는 한낮이 되어서야 짝을 찾아 조용해 졌다. 마른번개에 놀란 물새가 강 뚝 위에서 급히 날아 산중턱 노송 숲으로 몸을 숨기고 구름사이로 장난치듯 태양이 다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찾아든 한낮에 열기를 내몰고자 사방으로 창문을 열고 덜덜대는 선풍기를 얼굴부위에 공정하고서야 하얀 신문 벤드를 끌러 접혀 있는 신문을 펼친다. 첫장부터 채워진 광고와 바쁜 철에 별스럽지 않은 것으로 다투는 정치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일면을 채우고 정갈하게 써내려간 문장의 사설을 일고 남의 나라 전쟁 불꽃이 튀어 수만리 동방나라를 전쟁보다 더한 시끄러운 소음으로 채우고 있는 기사에 눈이 간다.

재앙적인 질고와 겹친 먼 나라의 전쟁 소문은 다른 먼 나라 사람의 입술로 말미암아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전쟁의 상흔을 직접 격은 사람들에게는 아물었던 상처를 덧나게 만들었다. 첨예한 종교적 시선과 인간의 이기가 결합되면 언제든 사람을 닮은 무서운 괴물이 출현하고 이성의 끈을 놓은 광기가 삶을 지배한다. 놀라운 것은 괴물의 목에 두르고 있는 것은 고등종교의 상징이다. 진리 수호의 선명한 그들의 논리 앞에 인간의 고통과 절규는 소리 없는 아우성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을 찬미하고 긍정하는 초점 잃은 자들은 인간의 두려움을 음식삼고 어린아이들의 불행을 음료로 마신다. 이들의 파괴적 본성을 친절한 미소와 타인을 배려가 가득 했던 거리를 전차의 굉음으로 채우고 나른한 저녁을 함께하던 가족들의 식탁을 부수어 버린다.

내가 아는 한 하나님 앞에 전쟁만큼 큰 범죄는 없다. 아벨을 죽인 카인의 후예가 겪는 참혹한 형벌은 평화를 모르는 것이다. 이들은 용맹한 전사는 추앙할 줄 알면서 평화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전쟁을 방비하기 위한 힘의 비축은 전쟁을 예방하는 포기할 수 없는 큰 축이면서 너무도 당연한 모습이다. 이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또 하나의 축으로 이웃과의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할 때 곤고한 평화가 유지 될 수 있다.

이 땅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문명을 잃어 버릴만한 엄청난 파괴를 불러올 것이다. 승리와 패배가 전혀 의미 없는 비극만 남게 될 전쟁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한반도의 전쟁은 원시적 이고 재래적인 전쟁을 넘어서는 가공할 무기가 동원 되는 초 현대전이 분명한데 텔레반의 점령적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보여 진다. 누가 뭐래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 것 보다 오늘의 평화를 이어가기 위하여 분열과 광기를 소멸시키고 국방을 다지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관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이 수해로 몹시 어렵다고 한다. 체제의 낙후로 절망하는 그 땅의 형제들이 더한 고통에 신음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넉넉히 여물어가는 가을이 나눔을 통해 더욱 풍성해지기를 원하며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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