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 풍년
갈치 풍년
  • 남광현
  • 승인 2021.10.1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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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위드 코로나(With Corona) 발표와는 상관없이 10월 들어서면서 어촌의 한적한 포구에는 이미 위드 코로나가 적용되는 분위기이다. 연거푸 2주 동안 이어진 대체휴일제도의 영향인지 분명치 않지만, 주말이 되면 포구의 드넓은 주차장이 낚시객들의 차량으로 가득 메워지고 봄철에 이어 다시금 어부들과의 보이지 않는 실랑이가 시작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환절기만 되면 여지없이 목감기로 고생하는 필자처럼 이제는 봄, 가을로 작은 어촌 포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이다. 필자가 올봄에 올린 글에서도 어부들에게 적용되는 어업법과 레저 인들에게 적용되는 법의 형평성에 있어 보완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듯이 갈등 구조를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목사님 저 00권사여유 사모님 전화 안 받으셔서 급해서 목사님께 전화 했어유”
“예 권사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유 무슨 일은유... 그냥 00이 아배(아버지의 경상, 전라도 사투리) 고모가 갈치를 많이 잡았는디 목사님네 좀 드렸으면 해서유...”
“사모님 계시지유 빨리 방파제로 좀 내려오라구 하셔유”
“예 권사님 감사해요 빨리 내려가라고 할께요.”

급하다는 소리에 잠시 긴장했다가 맘이 놓인다. 바다에서 급하다는 말은 쉽게 쓰이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다에 나가 있는 어부들이 육지에 연락해서 급하다고 알리는 경우는 대부분 큰 어려움이나 사고를 만났을 때이다. 얼마 전 통발 어업을 주로 하는 교회 권사님 내외분이 바다에 내려놓은 통발을 확인하러 새벽 3시경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하는데 날이 밝을 무렵 그만 배에 물이 차올라 기관방(엔진룸-대부분의 어선 엔진은 스크류 프로펠러와 직결되기 때문에 구조상 배 밑에 위치한다)이 잠기게 되었다. 그 새벽 해양경찰서에 전화해 급하다고 큰일 났다고 신고를 했지만 결국은 지나가던 다른 배가 구조해 주었다. 권사님 내외분이 아찔했던 그 순간을 표현할 때 사용했던 말이 바로 이 말이다.

“기관방에 물이 차 배가 가라안는다고 급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계속 어디냐고만 묻지 참내, 답답해서유”

이렇듯 바다에서의 급하다는 말은 곧 생명과 직결되는 일인 경우가 많기에 권사님의 급하다는 전화는 필자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의미는 달랐다. 갈치는 성질상 빨리 다듬지 않으면 안 되는 생선 중 하나이기에 물 좋을 때 가져다 드시라는 의미였다.

올가을 바다 어장은 풍성함을 잊은 듯하다. 멸치도 귀하고, 전어도 귀하고, 꽃게도 어획량이 작년과 비교할 수 없다고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갈치가 풍년이 된 것이다. 곡간에서 인심 난다고 와중에 갈치 나눔이 마을을 즐겁게 해 주었다. 어렵게 잡은 갈치를 왜 그냥 나누어 주는지 궁금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어부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대상 어종을 잡아야 돈이 되는데 예상치 못한 어종을 거두게 되면 우선 판로가 특정하지 않기에 빠른 처리가 불가능하여 상품성이 떨어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선별작업에 들어가는 인건비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마을 상황에서 갈치 선별작업은 노인분들의 몫이 되는데 요즘 마을 노인분들은 꽃게 그물 작업으로 용돈벌이를 하고 있기에 일손 구하기가 어렵다. 어떻게 해도 상품으로 내놓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하다 보니 잡은 갈치를 다시 바다에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좋은 마음으로 마을 주민들과 나눔을 한 것이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갈치를 선물 받는 주민들은 기뻐할 일이지만 정작 어부들에게는 다시 바다로 나갈 힘을 얻기 어려운 일이다. 가을 어장을 운용하는 몇 개월 동안 이런 일들이 몇 번만 반복된다면 정말 힘든 결과를 맞이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저녁 식탁에 올려진 간이 잘 밴 갈치구이를 마주하면서 갈치 풍년의 기쁨과 감사보다는 안타까움과 시름으로 멍들어 가는 어부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위로의 기도를 조용히 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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