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바람 부는 것 평생 처음 봐유!
이렇게 바람 부는 것 평생 처음 봐유!
  • 남광현
  • 승인 2021.11.16 0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주말부터 서해안 지역에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여름철 태풍의 강도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19년 어촌살이로는 놀랄 수밖에 없는 바람을 맞았다. 무려 5일 동안 그침 없이 불어 제치는 바람은 처음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놀란 마음은 필자만의 것으로 간주했었는데 남선교회 모임 자리에서 나누는 어부들의 이야기도 분명 달라 보였다. 근심이 가득한 가운데 주고받는 대화는 이번 바람이 일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강 권사, 어장 뺏어?”

“아녀, 두 틀 남겨뒀지, 혹시 몰라 나뒀는디 다 뺄걸 그랬나벼, 버리게 생겼어.”

“조 권사는 배 올렸남?”

“나두 아직 어장 끝나지 않어서 그냥 뒀지 근디 뭔 바람이 이렇게 분댜?”

“나 집사는 낚싯배 어뗘?”

“뭐, 나야 못 나가지, 예약받지 않아서... 좀 쉬는 거지 뭐”

“그래도 올 해 낚시배는 괜찮어... 주말마다 날 좋았잖아?”

“그건 그려”

“ 주의보 떨어진다고 해서 하루 이틀이면 되것지 했는데 나참”

어부들에게 있어서 풍랑정보는 생명과 같다. 그래서 이런 경우 대화의 중심은 늘 날씨에 관한 정보 나눔이다. 어부들이 말하는 주의보는 바다에 부는 바람에 관해 제공되는 정보이다. 육지에서는 부는 바람의 세기에 따라 강풍주의보와 강풍경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바다에서는 같은 바람이지만 풍랑주의보와 풍랑경보로 표현한다. 참고로 풍랑주의보는 해상(海上)에서 풍속 14m/s 이상이 3시간 이상 지속되거나 유의 파고가 3m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될 때 기상청이 발령한다. 풍랑경보도 기상청에서 발령하는데 해상에서 풍속 21m/s 이상이 3시간 이상 지속되거나 유의 파고가 5m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필자의 생각에 어부들은 때에 따라 부는 바람을 몸으로 익혀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봄 어장 시작부터 가을 어장이 끝날 때까지 참 신기할 정도로 부는 바람을 알아채고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요즘은 과학의 발달로 먼바다뿐만 아니라 근해의 부는 바람까지도 관측 가능한 기구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기구가 파고 부이(Coastal Wave Buoy)라는 것이다. 이 기구는 해양기상부이보다 근해에 설치하여, 연안 바다의 복잡한 지형에 의해 국지적으로 서로 달리 나타나는 파고를 관측하고, 기상청에 CDMA로 자료를 전송하는 장비이다. 이렇게 현대화된 기구들의 도움이 초짜 어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평생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토박이 어부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오히려 그들은 입동 전후에 부는 바람의 의미를 더 크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봄과 늦가을에 바다 밑이 한번은 뒤집혀야 고기가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에 바람은 불어주어야 하고 그래서 이 시기에 부는 바람은 이로운 바람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지난 주말부터 일어난 바람은 도를 넘어선 모양새다. 70년이 넘는 세월을 바다에서 보낸 어부들에게도 일주일을 밤, 낮 없이 불어대는 바람은 낯선 바람이라는 의미이다.

“허, 나는 지금껏 이런 경우는 첨 보내”

“누가 아니랴, 이러다 바당(필자주-바다 밑)에 있는 것 다 읍써지것어”

“기후 변화 때문여... 앞으로가 더 큰 일여, 우리는 해 먹을 만큼 했는디 모르것네”

필자는 가끔 이분들의 신앙이 너울 타듯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때 견디는 힘이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풍랑주의보 소식 앞에서 근심 섞인 대화를 들으며 내심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평생 바다의 바람을 앞에 두고 살 수밖에 없어 저절로 몸에 밴 풍랑 읽는 능력처럼, 바다로 나갈 때마다 예수를 의지하는 몸에 밴 습관이 그들의 신앙생활에 부는 바람을 저절로 관리할 줄 안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