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의 추석 풍경
어촌의 추석 풍경
  • 남광현
  • 승인 2021.09.1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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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르신들이 파마와 이발하러 나가고 이웃 면 소재지에 있는 목욕탕 소식이 들려오면 명절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 된다. 올해도 추석이 다가온다. 그러나 작년과 같이 코로나19로 인해 늘 들려오던 목욕탕 소식과 파마하러 나가시는 할머니들을 모셔다드리는 일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어르신들의 분주함 속에서 명절이 다가옴을 살필 수 있다. 포구에 마실 나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힘없이 던지는 말씀들 속에서 자녀들을 위한 행보임을 바로 알 수 있게 된다.

“어이, 오늘 게는 좀 나오나?”

“아이구 말도 마요, 읍써유”

“좀 줄 거 없지?”

“워쪈댜, 오늘은 우리 애들 쓸 것도 못 했어요”

“괜찮어, 내일은 뭐 쓸 것 좀 나오것지, 그러구 저러구 내일은 나 좀 줘야것네...”

“예, 내일은 뭐 나오것쥬, 아님 성신호한테 얘기 좀 해 봐유 거기가 좀 잡는 것 같은디”

“알았어, 어쨌든 내일은 좀 줘야 혀”

“나두 한 20키로 필요한디 나도 구해줘 봐유, 우리 애들이 무젓(꽃게 무침)을 워낙 좋아혀쟌어, 이번에도 명절 세라고 돈부터 부쳐와서 그려”

“큰일 났네, 바당에 게는 읍고 쓰셔야 하는 분들은 많고...”

“예, 알았어유, 어트게든 되것쥬, 어려우셔도 일단 내일 나와보셔유”

흥정이 재미있다. 어떤 결론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분들 말처럼 결국 이루어진다. 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과 어부와의 이런 대화를 듣다 보면 명절 앞두고 외지에 있는 자녀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보이지 않게 자녀들의 자랑이 쏟아져 나오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들은 이야기이다. 명절 앞두고 할머니 다섯 분이 일상처럼 마을회관에 모이셨다. 한 할머니가 옆에 있는 할머니에게 그 집 아들이 서울에서 큰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집 담보로 대출해 줬다는데 어떻게 됐냐고 염려하며 물었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시름 섞인 말로 모르겠다고 답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눈치 없는 할머니 한 분이 말을 받으면서 우리 아들은 뭐가 잘 돼서 그런지 명절 세라고 작년보다 더 많이 보내줬다고 말했고, 기다렸단 듯 나머지 두 할머니도 자식 자랑에 입이 마를 지경이었다고 한다. 대출해 준 할머니가 그 말을 듣다가 세 분 할머니의 자제분들과 자기 아들의 과거를 비교하며 깜냥도 안되는 사이라고 자식 두둔을 하며 비위를 건들었다고 한다. 결국 그날 마을회관에서는 큰 다툼이 일어났고 매일 함께하시던 점심, 저녁 식사가 없었다고 한다. 노년에 자식 자랑은 큰 즐거움이면서도 때로는 아픔인듯하다.

명절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풍경은 마을 입구부터 걸리는 환영 플래카드다.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 똑같은 플래카드가 한, 두 개 걸리는 것이 아니다. 필자 세어 볼 때 작은 어촌마을에 보통 5개에서 8개씩이나 된다. 필자 생각에 같은 플래카드를 뭐 저리 많이 걸어두는 걸까? 대표적인 낭비 사례 아닌가? 여겼었다. 그래서 이장님께 여쭈었더니 플래카드가 똑같은 이유는 광고사가 지역에 하나밖에 없어 그곳에 함께 맡겨 그런 것이고 여러 개가 걸리는 이유는 마을 내에 있는 나름의 조직들이 앞다투어 참여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마을 내 나름의 조직? 자세히 보라는 이장님 말씀에 살펴보니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 문구 밑에 작은 타이틀이 있었다. “마을 노인회”, “마을 어촌계”, “마을 부녀회”, “마을 청년회”, “마을 개발위원회”, “마을 소형선박 일동”, “00 이장단”이라고 적혀 있다. 디자인과 서체가 모두 같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마을에 플래카드가 많이 걸리는 이유를 십여 년 만에 알게 되었었다.

또 다른 풍경이 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선물 상자들이다. 명절 전에는 교회로 인사를 나누기 위해 찾는 손님들과 커피도 나누고 나름 준비한 선물도 나누며 시골 인심을 확인한다. 인사를 나누는 분들이 대부분 정해져 있기에 필자도 맞춤처럼 준비하게 된다. 그런데 난감한 경우는 잠시 교회를 비우게 될 때 교회 현관 앞에 가져다 놓은 상자들이다. 선물 보자기에 잘 싸져 있는 것이 분명 명절 선물인데 누가 보내왔는지 표지가 없다. 혹시 잘못 전해진 건 아닌지 싶어 열어 볼 수 없는 선물들이다. 이런 선물들은 안타깝게도 명절이 지나서야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다. 교회에 고이 모셔두고 누군가의 연락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곳 어촌의 추석 풍경은 무젓(꽃게 무침) 준비로 시작되고 할머니들의 힘겨운 입씨름으로 마중하며 선물 보따리의 주인을 기다림으로 끝이 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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