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빈동 전투
짜빈동 전투
  • 최광순
  • 승인 2021.09.2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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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과서에도 실린 한국군 이야기

베트남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미국은 미2사단을 빼 베트남전에 투입하겠다는 협박으로 한국군파병을 요청합니다. 미2사단 철수는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 있기에 한국은 선택의 여지없이 육군의 맹호부대 1개 사단과 해병대의 청룡부대 1개여단을 파병합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물량전으로 펼치지만 북베트남군은 파죽지세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갑니다.

그러나 한국군의 개입으로 베트남군은 전투마다 패배를 겪으며 한국군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베트남 지휘부에서는 이길 승산이 없으면 한국군과의 교전을 피하라는 교전수칙이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베트남군은 한국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짜빈동 전투를 준비합니다. 정규군 2개 연대가 청룡부대의 1개 중대를 공격하게 됩니다. 300명이 안 되는 병력이 4,000여 명이 싸우는 전투였습니다. 결과는 뻔하지만, 뻔한 결과가 일어나지 않고, 베트남전쟁에서 중대 단위 전투에서 전무후무한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무기조차 한국전쟁에서 사용하던 M1을 사용하였고, 적은 AK47 소총을 사용하였습니다. 철기와 청동기의 싸움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당시 북베트남의 2종류의 군대가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들었던 베트콩은 게릴라조직에 가까운 민병대이고, 정규군 따로 있었습니다. 짜빈동에서 투입한 병력은 북베트남 정규군 가운데 강철연대라 불리는 최고의 정규군이었습니다. 미군에서도 조차 당시 짜빈동에 주둔하던 해병 중대를 조롱했습니다. 미군 전투 교본에 볼 수 없는 특이한 중대방어전술은 그들에게는 비하 거리였습니다.

전투 결과는 아군 사상자 15명에 부상자 33명, 베트남군은 243명의 사상에 2명의 포로를 잡는 전적을 올리게 됩니다. 공로로 전 부대원이 일 계급 특진이 이루어집니다. 훈장 또한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이 수여됩니다. 이 전투는 미국 교과서에도 실렸으며, 이후 미군은 한국군을 인정하게 되고, 비로소 M16 소총을 지급하게 됩니다. 또한 미군과 한국군의 합동작전 시에는 미군들이 양말을 벗고 잘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짜빈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가장 큰 원인은 중대장의 지도력과 부대원들의 큰 전투의지였다고 합니다. 병력의 큰 차이에도 역습으로 적을 혼란을 주기도 했으며, 부상으로 전투력을 상실한 해병대는 적들과 함께 수류탄 자폭까지 했다고 합니다.

짜빈동 전투를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한민족만의 특이함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저력이 내재해 있는 것 같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것이나. 세계경제 10위권의 나라, 세계국방력 6위…. 더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교단별로 한국에 모두 있습니다. 작은 한반도에 있는 나라가 세계 순위 상위권을 두루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나갈 것 같은 한국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세습에, 교회를 돈으로 사고팔고,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대형 사고 1건이 일어나기 전 29번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가량의 위험 요소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미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한 경고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빠른 대처방안은 짜빈동 전투에서 볼 수 있었던 지도자의 지도력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참 불안합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 돈 봉투를 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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