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판도라의 상자
  • 최광순
  • 승인 2021.09.04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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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이후의 교회

 

코로나를 겪으면서 교회마다 걱정이 생겼습니다. 비대면 예배의 확대로 교회와 멀어지는 교인들의 문제입니다. 더 큰 걱정은

‘코로나가 끝나도 교인들이 다시 교회 안으로 들어올까?’

하는 문제입니다. 목회하는 목사라면 누구나 가져보았을 고민입니다. 단지 기우이길 바라는 마음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정말 그들이 교회에 등을 돌린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를 일’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비대면 예배로 온라인예배가 이루어졌고 교인들이 그 예배에 참여할 줄 알았지만, 윈도쇼핑 하듯이 여려 교회를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는 기존 평신도 안에 가지고 있던 호기심과 이탈에 대한 감추어진 욕망이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회는 이때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할지언정,

“다른 교회는 예배를 어떻게 드릴까?”

하는 호기심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았습니다. ‘주일예배만큼은 본 제단을 지켜야 한다.’라는 한국교회 안에 뿌리내린 가르침에 함부로 본교회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명분이 생겼습니다. ‘COVID-19’라는 변수는 일반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큰 전환점입니다.

본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설교와 소그룹을 통해 이루어지던 신앙으로, 담임목사 한 사람의 설교와 예배를 드렸지만,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교인들은 다른 세상의 하늘과 풀과 땅을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중형교회 이상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소형교회는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의 이탈은 예상해야만 합니다. 신앙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겠지만, 신앙은 있되 예배를 드리는 장소와 방법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형교회는 남아있는 사람들을 블랙홀처럼 더 빨아들일 것입니다. 가정 심방을 불편해하던 이들인데,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맘껏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편의 뮤지컬 보는 것처럼 잘 준비된 시스템과 다양함은 동네 골목의 슈퍼마켓에서 대형마트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현상과 닮았습니다.

대안은 무엇인가? 많은 목회자와 얘기를 나누었지만, 대안이라는 것은 기존 목회를 답습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의 설교가 좋아서 교회에 머물러 있었을까?’

온라인으로 더 좋고 많은 설교를 듣게 되므로, 설교에 목숨 거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오히려 교회의 신학적 해석인 예배하는 자들의 모이는 곳, 공동체 의식이 교인들을 하나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형제와 자매’라는 공동체 의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신앙공동체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

초대교회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찬을 통해 끊임없이 ‘형제와 자매’라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어떻게 성찬을 할 수 있겠는가?’

현대교회의 성찬은 생각보다 그 의미가 퇴색해 형식적으로 변모되었습니다. 목사만이 중요하게 생각할 뿐이지 교인들 대부분은 ‘그냥’ 할 뿐입니다. 초대교회 성찬을 통한 예배는 모두가 참여하는 모임이었지만. 지금은 목사 한 사람의 단독공연과 같습니다. 시청자요, 방청객일 뿐입니다.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면, 아이들조차 엄숙한 의식에 몰두하며, 여자들조차 건넛방에서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제사상에 술잔을 올리는 어른만이 의식을 진행하는 것 같지만, 뒤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제사에 완전히 동화되어 버리는 공동체 의식을 보게 됩니다.

이런 공동체 의식을 개신교의 두 가지 예전 중 성찬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온라인예배의 큰 단점은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를 약화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비대면 예배에 성찬을 더 적극적으로 시행한다면?’

목사가 성찬을 집례하고, 각 가정에서 같이 포도주를 따르고 빵을 찢어 나누어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일입니다. 설교 중심의 예배에서,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성찬을 시행한다면 소형교회는 신앙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글 안에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없어 수박 겉핥기만 하였습니다. 이후 더 세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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