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선생님이셨습니다.
  • 신상균
  • 승인 2021.09.09 07: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월 3일 금요일, 밴드에 글이 올라왔습니다.
고 유재만장로님 소천,
입관예배 : 9월 4일(토) 오후 5시 입관
발인예배 : 9월 6일(월) 오전 10시
장 소 : 청량리 감리교회
그 글을 읽는 순간 ‘유 장로님도 돌아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마음에 찬바람이 휙하고 불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청량리 교회를 가면 저를 가장 반갑게 맞이 해 주시는 분이 바로 유 장로님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유 장로님은 저의 아버지와 함께 장로 안수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의 아버지이시기도 합니다. 제가 중등부 전도사로 처음 전도사 생활을 시작할 때, 유 장로님은 중등부장을 맡으셨고, 제가 전도사 사역을 하는 동안 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의 목회 인생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습니다.
며칠전 충주의 한 사모님이 코로나19로 돌아가셨는데, 그로 인해 충주와 제천의 목회자들이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서울에 갔다 와도 될까?
게다가 장례식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괜챦을까?
갈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하고 있던 그 순간, 살아 생전 장로님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청량리 교회를 갔을 때 저를 보면 반갑게 맞아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
그분은 저의 선생님이셨고, 저의 아버지의 친구이셨고, 제 친구의 아버지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가 되고 나서부터 저를 보면 한번도 하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 저를 존대하셨습니다.
저를 가르치셨고, 아버지의 친구이고, 제 친구의 아버지이기에 저를 보면 아들처럼 대해도 되는데, 제자처럼 대해도 되는데, 유 장로님은 늘 저를 목사님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생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를 최고로 대우해 주셨던 선생님께 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례예배를 드리고,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청량리 교회 성도님들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저의 선생님이셨습니다.”

유 장로님은 저의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이었기에 제자가 목사가 되었을 때 목사를 섬기는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님이었기에 아들로 대하지 않고, 학생으로 대하지 않고, 목사님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았기에 저도 목사님들을 잘 섬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어려도, 교회가 작아도, 때로는 품성이 좋지 않아도 어느 목사님을 만나도 선생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장례식 날, 저는 이렇게 인사 드렸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목사가 되겠습니다.”
오늘도 저를 보시고, ‘목사님 잘하셨어요’ 하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웃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