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스물 네 번째 이야기
큰나무 스물 네 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1.02.2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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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을 이겨낸 생명들이 어설프게 다가서는 봄을 맞으러 고개를 내밀고 있다. 냇가에는 검은 구슬을 뭉쳐 놓은 듯한 개구리 알들이 미끌거리는 자태를 보이고 양지쪽은 철 이른 제비꽃이 피었다. 냉이를 캐는 아낙은 검은 봉지가 터질 듯이 욕심을 담아 저녁 바람에 떠밀려 집을 향해 걸움을 옮기고 지는 햇살에 몸을 맡긴 늙은 개가 불러도 살짝 꼬리를 움직여 답을 할뿐 엎드린 자세 그대로다.

엊그제 매서운 겨울 보다 시리고 아픈 시절을 살아온 여인이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장로 안수를 받았다. 그분의 삶을 들어 아는 내겐 잔잔히 스미는 봄기운 보다 더 깊숙이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을 주었다.

그분의 조부는 소문난 부자였다. 암울한 식민지 땅에 부요의 가당치 않음을 알고 있는 그는 의미 있는 결단으로 시대의 물음에 답을 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이 가진 많은 재산을 소비하기로 한 것이다. 후에 그의 가족들이 격어야 할 어려움을 계산에 넣지 않은 완벽하지 않은 계획으로 자산을 정리하기 시작한 그는 어린 아들을 아내의 등에 업혀 만주행을 시작한다. 아이의 귀저기 속은 전답을 팔은 돈으로 채워져 있었다. 몇 번에 걸친 만주행은 그와 가족을 극도의 가난에 처하게 만들었다. 온 동네는 그가 도박에 미쳐 가산을 탕진했다는 소문으로 무성했다. 물려 줄 것이 가난 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그는 많은 이들의 외면 속에 쓸쓸히 세상을 등지고 생계는 등에 업혀 만주를 유람했던 아들에게로 넘어 갔다.

장로님의 부친은 궁색한 삶과의 전쟁을 치르느라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킬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학령기를 넘긴 딸은 숙녀의 반열에 들어서고야 초등학교의 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딸은 동네의 건실한 청년과 결혼을 했지만 그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첫 딸을 낳고 둘째로 태어난 아들은 가족에 기쁨이면서 걱정도 함께 안겨 주었다. 자라며 잔병 치례를 심하게 하면서 여인의 삶의 무게는 한 아이는 등에 업고 양손에는 한 아이씩 손을 잡고 병원을 찾아 헤매는 고단한 나날로 채워졌다. 네 명의 자녀는 밭일을 나가 있는 어미를 기다리느라 아쉬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결단 있고 명석한 여인은 하나님을 만나 가난과 노동으로 형편없이 지쳐있는 자신을 위로하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한다. 가슴에 닮고 있는 수많은 눈물의 흔적과 상처는 치유 되어 지고 자신의 몫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행복이 주어졌다. 시집식구와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앙은 여인의 유일한 평안과 기쁨이었다. 흙강아지 같던 아이들은 세월이 약이 되어 건강하고 신실하게 자라 주었다. 큰딸의 남편은 장로가 되었고 둘째와 셋째는 목회자가 되었고 넷째는 집사로 너무도 귀엽고 똑똑한 아들을 둔 엄마가 되었다. 교회의 열심 있는 일꾼인 여인은 고집불통의 남편을 하나님 앞에 인도하여 무릎 꿀리는데 성공하였다.

심한 농사일로 엉망이 된 육신은 몇 번에 걸친 허리 수술로 곱게 딴 댕기머리의 소녀를 주름진 노인으로 변화 시켰고 찬바람만 닿아도 시린 무릎을 움츠리게 만들었지만 주님을 만난 그날의 미소만큼은 조금도 빼앗아가지 못했다.

상기된 얼굴에 진지하게 안수례에 임하는 장로님의 모습은 오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개선하는 장수의 모습이었다. 마치 준비 된 원고를 읽어가듯 또렷하게 하나님과 교회와 안수 보좌진에게 감사를 표하는 장로님의 모습은 삶이 그분에게 준 응축 된 지혜와 신앙으로 얻은 너그럽고 평안한 심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분노와 원망으로 세상을 변화 시킬 수는 없다. 믿음의 위대함은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는 봄과 같은 힘을 지녔다.

작은 돌 틈에 뿌리를 내리고 이른 봄 보라색 꽃을 피운 제비꽃은 꼭 이 여인을 닮았다.

봄바람이 스미도록 열어놓은 창틈으로 노곤한 피로가 함께 찾아드는 한 날의 저녁이 다가 선다.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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