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 떠 있는 십자가
바다 위에 떠 있는 십자가
  • 남광현
  • 승인 2021.02.19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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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 있는 방송 중 하나가 전국의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각 방송사마다 컨셉트만 다를 뿐 전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을 찾아 알려내고 맛의 비법을 소개한다. 가끔은, 교회로 지역의 맛집을 소개해 달라는 전화가 오기도 한다. 시골 교회이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일이겠다. 다른 경우도 있었다. 몇 해 전 일이다. 대전에 있는 모 교회의 집사라고 말하며 취미로 사진 출사를 하는데 동호회 사진 잡지에 실린 바다 위의 십자가 컷에 관해 소개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도 그 광경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디로 가면 바다 위에 떠 있는 십자가를 볼 수 있겠냐고 도움을 청했다.

바다 위의 십자가?...

십수 년을 이곳에서 살아왔지만 처음 듣는 말이었다. 십자가라면 목사로서 낯설지 않은 용어인데 바다 위에 십자가가 떠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혹시나 하여 지역의 목회자들과 교우분들에게 확인을 해 보았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이곳에는 그런 십자가 없다고 연락을 주었더니 집사님께서 확인차 사진을 보내 주었다. 보내 준 사진으로는 정말 바다 위에 십자가가 떠 있었고 출사자는 촬영지가 서천 서면 마량 앞바다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지역 내에 12개의 교회가 있고 1,000명 가까운 교우들이 있는데 바다 위에 떠 있는 십자가를 아는 분이 없었다. 분명 맛집이 있다고 말하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 맛집을 모르고 있는 격이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보내 준 사진의 배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배경에 포구와 등대가 아주 희미하게 보였다. 우리 동네가 맞았다. 분명 마량리 포구와 등대였다. 그렇게 촬영할 수 있는 위치가 어디일까를 카메라를 들고(필자도 사진에 관심이 있어서 개인소유의 카메라가 있다) 자동차를 운전해가며 가능한 장소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동네 안에서 포구를 배경으로 한 촬영은 불가능했다. 반대로 바라보니 멀리 옆 동네 보였고 그곳으로 이동해서 카메라 앵글을 잡아보니 놀랍게도 그 집사님이 보내 주신 사진과 비슷하게 보였다. 그런데 십자가는 없었다. 망원렌즈로 바꾸어 다시 포구 배경을 뒤에 두고 바다를 살펴보았다. 한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앵글을 살피던 중 십자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 바다 위에 십자가가 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이네 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말했던 십자가는 다름 아닌 바닷길을 안내하는 표지였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교회의 십자가로 보였던 것이다.

사순절을 맞았다. 세상 사람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표지를 보고 십자가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을 웃음으로만 넘기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도 십자가의 경험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절기 동안 십자가를 찾아보며 십자가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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