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과 주꾸미 그리고 속내
동백꽃과 주꾸미 그리고 속내
  • 남광현
  • 승인 2021.03.2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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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길 좀 물읍시다.” 차에서 내릴 생각은 아예 없이 그냥 길을 묻는 분들이 참 많다. “분명 네비게이션은 여기라고 말하는데... 여기가 동백나무숲입니까? 동백정이 어디입니까?” 3월 중순이면 여지없이 경험하는 일이다. 매년 봄마다 경험하는 일이라서인지 이제는 교회 마당으로 들어오는 차량을 보기만 해도 기념관을 방문키 위해 오는 차량인지, 동백나무숲을 찾는 차량인지 맞출 수 있을 정도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네비게이션으로 마량리 동백정을 찾으면 동백정교회 마당에 데려다 놓는다. 그러니 처음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교회가 위치 해 있는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 일원에서 1년이면 4차례의 공식적인 지역축제가 열린다. 특히 3번의 축제는 마량리 마을 내에서 이루어진다. 작년과 올해 초에 있는 모든 축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로 인해 취소된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이맘때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산 제철 주꾸미와 서해 앞바다의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디고 봉오리를 터트린 토종 동백꽃을 감상하려고 찾고 있다. 교회 근처에 있는 동백나무숲은 천연기념물 169호로 지정된 수령이 무려 500년 이상 되는 동백나무 군락지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나무들은 자연개화 북방한계를 표지하는 역할을 해 왔다. 아주 작은 꽃잎으로 수줍게 피어있는 동백꽃을 보노라면 강할수록 더 겸손해야 함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안다는 것이 갖는 힘은 분명히 있다.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동네 어르신들이 하는 말이다. 개중에는 우리 교회 교우들도 있었다.

“길을 물으려면 차에서 내려야 예의지...”, “잘못왔슈, 이리가면 길 없슈”.

길이 없단다. 묻는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한 대답이다. 길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얼핏 봐도 알만한 토박이분들이 길 없다고 한다. 부연하자면, 이런 표현이 충청도식 표현이다. 말이 짧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어르신들 속내는 “당신이 가고 싶어 하는 그곳을 나는 알고 있으니 더 겸손하게 예의를 갖추어 물어보면 알려 줄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동백나무숲을 찾으려는 이들에게는 곤욕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교회를 지켜오던 교우들이 새로이 신앙생활을 시작한 교우들에게 전하는 말 중에 어렵지 않게 귀동냥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혀봐서 아는디, 신앙생활 그렇게 하는거 아녀... 잘혀봐” 처음 듣는 교우들은 잘하지 못해서 듣는 책망인지, 잘하고 있으니 더 잘하라는 권면인지 구분 짓기 어렵다. 그렇게 강제적 신앙상담을 해 주신 분이 바로 얼마 전 교회 마당에서 나에게 “목사님 왜 저는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지 않을까요?”, “신앙생활 아무리 오래 해도 믿음이 없어서 그런가 신명이 않나요” 라고 때아닌 신앙상담을 했던 분이다. 그때는, 얼마나 답답하실까? 위해서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고맙다고 생각했던 분이다. 속내를 모른다. 이것이 충청도 바닷가 목회의 맛이기도 하지만 그 속내를 알아가기까지는 믿음의 인내가 반드시 요구되는 일이다.

“허이~ 아랫녘 주꾸미를 어디다 붙인데유 어림도 없쥬... 여기 주꾸미는유 바당(바다 밑)부터 달라서 훨씬 맛있어유”,

“목사님도 아시지만 우리 동백꽃은 어디가도 못봐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꽃이여유...”

나이드신 교우분들이 매년 이맘때만 되면 목사 앞에서 자랑스럽게 내어놓는 말들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웃음이 나는 말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촌교회의 18년 목회 경험으로 그 속내를 재해석해 보며 같이 웃을 수 있다. “목사님은 이 마을 분이 아니세요... 목사님들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끝까지 이곳에 남아 있을 사람들이예요... 그러니 우리 무시하지 마세요”. 주님만이 아시는 일이다. 목사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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