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어장 정리 좀 하겠습니다.
목사님, 어장 정리 좀 하겠습니다.
  • 남광현
  • 승인 2021.03.06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해안 어촌 중에서 우리 지역은 농촌과 달리 1년 어장 준비가 2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어선에 따라 금어기(禁漁期-어류 따위의 번식과 보호를 위하여 고기잡이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정한 기간)가 지정되어 있어 그때를 비끼어 조업해야 하기에 1년 농사가 일찍 준비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가 되면 해거름 없이 매년 마을이 어수선해지고 큰 소리를 적지 않게 듣게 된다. 이유는 준비해야 하는 그물 하나의 크기가 기본적으로 양쪽 100m는 족히 되고 이런 그물을 대략 20-30 틀에서 많게는 100 틀 이상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펼쳐 놓고 수리해야 할 넓은 땅이 필요한데 마을 안에서 그런 자리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초순에 남선교회 회원 몇 분과 마을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는데 그 주인이 대뜸 “목사님 교회 땅 좀 써야겠습니다. 우리가 올해 어장을 꾸렸습니다.”라고 부탁인지 명령인지 구분키 어렵게 말씀하셨다. 들어 보니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할 수 있는 어선 허가증을 구하고 배를 짓는 중이었는데 그물 일할 땅은 미처 확보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급한 마음에 그 식당 주인의 형님인 우리 교회 집사님이 목사에게 부탁하면 교회 땅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동생에게 안내해 준 것 아닌가 싶다.

가끔 경험하는 일이지만 시골에서는 이렇게 어찌할 수 없이 당황스러운 일들을 마주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는데 전화를 주신 할머니께서 “거기 어디유? 누구슈?”라고 당당히 물으셔서 “여기 교회인데요”라고 답해 드리면 “에이 쓸데없이 왜 전화한댜”라는 뒷말을 남기며 수화기를 내려놓는 경우라든지, 교회 부지와 이웃하고 있는 땅 주인이 느닷없이 교회로 찾아와 “이 교회 교인들이 경계 말뚝을 뽑아 놨으니 교회 주변 땅을 다시 측량해서 경계 말뚝 복원시켜 놓지 않으면 고발조치 하겠다”고 한바탕 고함지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경계 측량을 다시 하는 일(나중에 밝혀진 일인데 교인이 한 일이 아니었다.) 등, 시골 목사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다.

“목사님, 교회 땅에서 어장 정리 좀 하겠습니다.”

“마땅한 곳이 없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라도 어장 일을 하셔야지요.”

올해는 교회가 그 중심에 서버렸다. 교회가 땅을 사용하게 해 줌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교회 마당에서 들리게 된 것이다. 어장을 옮겨 놓는 것을 본 이웃 주민께서 난리를 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18년 바닷가 교회 목사의 경험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사실, 어장 일을 하면 그물에서 나는 생선 썩은 냄새와 갯벌 진흙탕물 그리고 약품 냄새가 두통을 일으킬 만큼 힘들다. 이웃 주민이 이것을 알기에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의 서운함에 화가 난 것이다. 이미 마을의 공터들이 어장 준비하느라 빈 곳이 없는 상황에서 늦게 배를 짓고 어장을 준비해야 하는 분에게는 교회의 공터가 분명 눈에 들었으리라. 형님, 집사님의 도움도 가능했을 터이고 그간 교회와 무관치 않은 집안이라는 인센티브가 작용하였음을 이웃 주민도 아는 눈치였다. 목사로서 형편을 들었기에 거절키 어려운 일이었음도 알고 있는 듯했다.

매년 반복되는 어장 준비 기간은 어촌 교회가 이웃들과 어떻게 관계를 지속해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고민은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십자가의 열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