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들리는 어선의 엔진소리
새벽녘 들리는 어선의 엔진소리
  • 남광현
  • 승인 2021.02.0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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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작은 포구를 울리는 어선의 엔진소리는 바닷가 교회 예배당의 기도 소리와 공명처럼 어우러진다. 깊은 겨울 적막강산에 새벽 바다를 헤치고 나가는 작은 어선들을 멀리서 바라볼 때면 저절로 읊조리듯 드리는 기도가 있다. “주님, 오늘도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옵소서.” 그 어선의 이름이 무엇이고 누구의 배인지 보이지 않지만, 그리고 어떤 선원들이 승선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포구를 떠나는 배를 교회 창문 너머로 내다 볼 때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18년간의 기도가 되었다.

먼 바다로 나가지는 못해도 근해에서 조업하는 배들의 위험은 대형 어선들보다 분명 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어두운 포구에서 들리는 배의 엔진소리는 만선의 기대보다는 안전에 대한 소망으로 마음을 모으고 두 손을 맞잡게 한다. 바닷가 교회들이 함께 가지고 있는 기도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나 싶다. 특히 작은 포구에 옹기종기 묶여있는 어선들을 볼 수 있는 어촌이라면 더욱이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일 듯하다.

바닷가의 교회? 일반적 상상으로는 그림같이 회화적이며 유럽 해안의 요트 낭만을 느낄 수 있을 듯 하여 찾고 싶은 충동이 발현되기도 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주인공이 되고 싶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실제로 교회를 방문하는 분들은 교회의 위치와 전경에 매료된 나머지 이런 곳에서 목회하는 것에 대한 동경과 자신의 신앙생활의 현장이 이곳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거르지 않고 말하기도 한다. 얼른 듣기에는 좋다. 그리고 내심 바닷가 교회를 더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 파도처럼 일렁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2020년만 해도 이 작은 포구에서 만선의 꿈을 안고 떠난 어선 중에 돌아오지 못한 어부가 2명이나 계셨다. 가족들의 울부짖음 소리가 마을을 뒤덮고 어부들의 회한 섞인 한숨 소리가 무겁게 들릴 때 바닷가 교회는 바다의 동경과 낭만이 아닌 사명과 이웃됨의 역할에 관해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한 번 주님께 묻게 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분명한 현실은 바다를 삶의 현장으로 삼고 대(代)를 이어 살아가는 어부들이 교회의 십자가 보다는 각자의 우상을 섬기는 일이 특심하다는 것과 교회와의 관계를 조금은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이다.(전체를 일반화시킬 수 없으며 필자가 목회하는 곳도 크리스천 어부 가정이 제법 된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바닷가에 교회들을 세우셨다. 주님이 행하신 일에는 분명 그분의 뜻이 있을 것이다. 바닷가 교회에서 19년차를 맞이하는 나로서는 그분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온 관심이 쏠려 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것이 목회의 기쁨이기도 하다.

앞으로 서해안 바닷가 교회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다. 작은 포구에 드나드는 어선을 바라보며 노아에게 보이셨던 그분의 뜻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무섭게 출렁이는 바다 너울을 바라보며 출애굽의 역사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때론, 예수 앞에서 무례하기가 짝이 없었던 극렬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경험해 보기도 했다. 주님께서 비록 십자가 위 이였지만 끝까지 견디며 그분의 뜻을 이루셨던 일을 거듭 상기시키고 이곳 어촌에 교회를 세우신 그분의 뜻을 주님처럼 이루고 싶어 아직도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물론 주님이 심으셨고 주님이 자라게 하시고 주님께서 열매를 거두게 하심에는 결코 이견이 없는 목회 현장이다. 전 세계 모든 교회들에게 동일하게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가끔은 바닷가 교회에서 새벽녘 어선의 엔진소리를 들으며 “주님, 누구의 어선이고 어떤 어부들이 승선해 있는지 모르지만 오늘도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드릴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한 은혜를 누리는 것만 같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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