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본 보아스!
손해 본 보아스!
  • 이구영
  • 승인 2020.12.18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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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의 이름의 뜻은 ‘재빠르다’ 혹은 ‘ 강하다’입니다. 여호수아의 인도 속에 시작된 가나안 정착의 시기에 보아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참으로 열심히 살았고, 그의 아들 보아스도 재빠르고 강하게 살면서 많은 부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면서 성실함으로 살다보니, 어느덧 땅을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들의 땅 까지 인수하면서 넉넉함을 누릴 수 있었고, 베들레헴 땅의 유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망해서 돌아온 친족 엘리멜렉의 유족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친족의 땅을 사서 그 집안으로 등기를 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보아스 에게 제가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손해 보지 아니하고 형제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손해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 기독교인들의 고민과 갈등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얻고 싶은데, 더 가지고 싶은데 예수님께서는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꾸만 높아지고 싶은데 하나님은 겸손하라고 낮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양 손 가득히 움켜쥐고 이 세상을 살고 싶은데 주님은 네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항상 남을 못 살게 굴더라도 내 이익을 챙기며 살고 싶은데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들을 위해 죽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신앙적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가치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사랑을 실천하고, 건강한 가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도제목에 이런 것을 자주 씁니다. 성령 충만하게 해 주세요! 저는 그런 기도제목을 볼 때 마다 기도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이 사람이 성령 충만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나 이런 기도제목을 썼나?
. 성령 충만케 되면 죄가 생각나서 늘 회개하며 살아야 합니다.
. 성령 충만케 되면 하나님이 너무 커 보이니까 겸손하여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을 높이며 살게 됩니다.
. 성령 충만케 되면 나 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 혹은 한 해 동안 나에게 고마움을 주신 분들이 생각이 나서 무슨 선물을 드릴까 고민하게 됩니다.
. 성령 충만케 되면 이 땅보다는 하늘의 가치가 더 커져서 이 땅 사람들의 생각의 틀이 아니라 하늘백성다운 생각의 틀 속에 살게 됩니다. 이 땅에 적응이 안 될 때도 많습니다.
. 성령 충만케 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왠지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생각나서 자꾸 그분의 의견을 여쭙게 되고, 기도와 순종이 자연스러워 집니다.
. 더욱이 성령 충만해지면 손해 보는 것을 기꺼이 선택합니다.

손해 본 사람들! 자신이 무지하기 때문에 손해 본 것 아니라, 계산이 잘 못 되어서 손해 본 것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손해 본 사람들! 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경건하고 바르게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 손해 본 사람들!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그 길이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아서 묵묵히 그 손해봄의 길을, 마치 예수님께서 골고다를 십자가 지고 오르시면서 우리들의 죄를 없애주시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듯이 그렇게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 내가 사는 집에, 우리 교회에 보아스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되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보아스가 그렇게 땅을 찾아주게 되었을 때 나오미는 자신을 기쁨의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동네를 돌아다닙니다. 이제 나의 쓰디 쓴 인생이 보아스 덕분에 기쁨이 되었다고, 얌체 나오미에게 마저 유익을 줄 줄 아는 보아스!

죄는 아담이 지었습니다. 죄는 하와가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 값을 대신 치러 주시며 양을 잡아 피를 흘려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죄는 사람이 짓고 손해는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죄는 사람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지우기 위해 피를 흘리신 분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사람이 물어내야 하고, 사람이 벌 받아야 하고, 사람이 피 흘려야 하고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이 손해를 보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내가 못 박혀야 했던 그 십자가에 주님이 달리심으로 내가 살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엄청난 손해를 보셨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고, 여기에 성경의 진리가 있습니다.

오늘 손해 보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내가 천국을 바라봅니다. 오늘 손해 보면서 누군가를 살려낸 보아스가 있었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이제 나도 그 뒤를 따라 험한 십자가 사랑하며 손해 봄의 자리에 앉아야겠다고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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