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유다
닮고 싶은 유다
  • 이구영
  • 승인 2020.12.04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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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나오는 유다에 관한 기록 가운데는 안 좋은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① 동생 요셉을 많이 미워한 사람 중 하나가 유다입니다.
② 요셉 나이 17살 때 10명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모의를 했고, 여기에 동조했던 사람이 유다입니다.
③ 요셉을 죽이지는 않고 구덩이에 빠뜨릴 때 이에 동조했던 사람이 유다입니다.
④ 구덩이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는 요셉의 애절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 옆에서 태연하게 밥을 먹은 사람이 유다입니다.
⑤ 밥을 다 먹은 후에 마침 지나가던 이스마엘 장사꾼들을 만나서는 망설임 없이 구덩이에 빠져 있는 동생 요셉을 은 20냥에 노예로 팔아버린 사람이 유다입니다.
⑥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뻔뻔스럽게 맹수가 동생을 찢어 죽였다고 거짓말을 한 사람들 중에 유다가 있었습니다.
⑦ 사랑하는 후계자를 잃고 크게 소리 내어 우는 아버지 야곱에게 끝까지 거짓말로 자신들의 죄를 숨기던 사람 중에 유다가 있었습니다.
⑧ 성경에 보면 다른 형제들과 다른 죄를 유다는 더 짓습니다.

ⓐ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고 함께 살아가지 말라고 하셨던 그 가나안 사람들과 유난히 친해서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사람이 유다입니다.
ⓑ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 유다는 첫째 아들의 부인 가나안 여인으로 얻었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이 다말입니다. 그리고는 아들이 죽자 그 며느리를 쫓아 내버린 사람이 유다입니다.
ⓒ 더 결정적인 죄는 그렇게 쫓아낸 며느리 다말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유다는 천국백성의 반열에 들 수 없는 죄인이고, 몰매를 맞아야 할 비도적적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 허물 많은 유다를 믿음의 조상들의 반열에 올리고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많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야곱의 12아들 중에 다윗의 조상이 된 사람은 유다입니다. 야곱의 12아들 중에 예수님의 조상이 된 사람은 유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어봅니다. 다 같은 죄인이지만 그래도 유다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천국백성의 냄새가 있을까?

1.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① 형 시므온과 레위가 이야기 합니다. 우리 같이 가서 우리들의 동생 디나를 욕보이고 성폭행을 저지른 저 세겜성의 놈들을 죽여 버리자고... 그때 유다는 동조하지 않습니다. 나 살자고 남 죽이는 일에, 내 기분 나쁘다고 남 죽이는 일에 동조하지 않았던 사람이 유다입니다.

② 동생 요셉이 죽어갈 때 그 요셉을 살리고 싶어서 차라리 노예로 팔더라도 저 생명만은 살려두자고 이야기 했던 사람이 유다입니다.

③ 또 며느리 다말이 임신을 했습니다. 당장 며느리를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며느리를 임신 시킨 사람이 자신인 것이 드러났습니다. 요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힘없는 며느리와 권력을 가지고 돈도 많은 시아버지 유다의 재판이 이어진다면 누가 이길까요? 유다는 자신의 죄를 덮을 수도 있었습니다. 유전가 검사가 있던 시대도 아니고, cctv가 있던 시대도 아닙니다. 그런데 유다는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출산을 허락하고 다말의 정당성을 인정해줍니다. 자신은 창피를 당하고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사는 한이 있다 하더라고 나 살자고 다른 생명을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2. 유다의 삶이 다른 형제들과 크게 다른 이유는 효심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유다는 야곱의 서자입니다. 족보로 따지자면 첫째 부인 레아의 4번째 아들이니 적자가 맞지만, 불행하게도 아버지 야곱은 유다의 어머니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에게는 4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아버지 야곱은 오직 라헬이라는 부인만 아내로 여기고 함께 살았습니다. 또한 라헬에게는 요셉과 베냐민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두 자녀들만 야곱의 참 아들로 인정 되었습니다. 슬픈 인생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유다와 10명의 서자들!

먹는 음식이 달랐고, 입는 옷이 달랐고, 하는 일이 달랐습니다. 아들로 여겨지지 않았기에 당연하게 아들들도 아버지라 부를 일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아들로 여기지 않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며 효도를 다합니다.
[창 42: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야곱은 베냐민과 요셉만을 아들로 여겼습니다. 야곱은 서자들을 아들이라고 부를지 않습니다. 르우벤도 레위도 유다도 단도 납달리도 그 누구도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다 너희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다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모시려합니다. 베냐민이 죽게 되었을 때 앞장서서 나서는 사람이 유다입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맘 상해 하실까봐...

[창 44:33-34]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 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그래서 성경은 르우벤과 형제들이라고 하지 않고 유다와 그의 형제들 이라고 표현합니다.
[창세기 44: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그는 나를 미워하지만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유다입니다. 아버지를 나를 구박하지만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유다입니다.

목숨을 걸 만큼!
이런 유다를 닮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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